세계적 자동차회사인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지난 9월 향후 1년 내에 자회사인 메르세데스에 대해 대규모 감원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을 때 노동조합측은 "말도 안된다"며 반발했다. 회사측이 지난해 6월 노사협상에서 '오는 2011년 말까지 경영상 이유로 인한 해고는 없다'고 이미 합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는 심각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당초 약속을 어겨가며 감원 방침을 밀어붙였다.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지난해 6월 경영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 그룹 계열사(메르세데스,마이바흐,스마트)에 대한 경영상태 분석을 의뢰한 결과 약 10%인 8500명의 잉여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경영실적도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120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던 메르세데스는 올 상반기 중 52만대를 파는 데 그쳤다. 본사 입장에서는 정리해고라는 고강도 처방전 외엔 다른 선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 유럽에는 감원이라는 칼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다. '고비용 고복지'로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은 기여도가 낮은 임직원들에게 가차없이 해고통지서를 보내고 있다. 워낙 불황의 골이 깊어 임금 동결,근로시간 연장 등의 조치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휴렛팩커드프랑스는 최근 기업 간 경쟁 격화로 수익성이 악화되자 1240명의 직원을 해고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당장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걱정하게 된 빌팽 프랑스 총리는 인원 감축계획을 재고해줄 것을 미국 본사에 요청하는 동시에 그동안 프랑스에서 받아온 공적보조금 반환을 청구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나 휴렛팩커드측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 내에선 오히려 총리의 행동이 잘못됐다며 비난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집권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프랑소와 필롱 상원의원은 "매우 변덕스러운 시장환경 속에서 활동하는 기업을 고용 의무로 구속할 수는 없다"고 반박해 휴렛팩커드의 감원 방침에 손을 들어줬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독일 자회사인 오펠 역시 지난해 말부터 '자발적 퇴직'이란 이름 아래 대규모 정리해고를 시행 중이다. 자발적 퇴직이란 우리로 치면 '명예퇴직'과 유사하다. 현재까지 이 프로그램에 등록한 근로자는 총 3만2000명 중 6000여명에 달한다. 퇴직금의 규모도 적지 않다. 근속연수가 30년이고 월 3600유로(약 450만원)의 임금을 받던 50세 노동자는 자발적 퇴직금으로 21만6000유로(세금 포함·약 2억7000만원)를 받아가고 있다. GM은 자발적 퇴직금 프로그램을 위해 7억5000만유로를 준비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대규모 감원바람 속에서 일부 노조는 '일을 더할테니 해고만은 피해달라'며 감원 대신 근로시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2011년까지 독일 내 근로자 17만6544명의 일자리를 보장해 주는 대신 노조로부터 2년간 임금동결,연간 200시간인 탄력근로시간을 400시간으로 확대,연말 상여금의 실적연계제 도입 등에 합의했다. 독일 내 제조업들이 인건비가 싼 동구권 국가 등으로 빠져 나가자 노조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사용자 요구를 대폭 수용하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독일 노동현장에선 생각지도 못하던 일들이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독일노총(DGB) 소속 한스 뵈클러재단의 도르스텐 슐텐 연구위원은 "독일 기업들은 그동안 기술혁신 강화와 훈련 증진을 통해 고성과를 지향하는 이른바 '하이로드'(High-Road) 전략을 추구했다"며 "요즘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임금 삭감과 감원 등을 통해 비용을 줄이는 '로로드'(Low-Road)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엔 영국항공 기내급식 제공 업체인 게이트고메가 파업에 참여한 근로자 650여명을 모두 해고해 사회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달쯤 후인 9월 400여명 이상이 복직됐지만 나머지 250여명은 강제로 정리해고당하거나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둬 노동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이 분쟁은 영업상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회사가 정리해고를 제안한 상태에서 파견노동자들을 고용해 노동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비롯됐다. 프랑스 경영자협회(MEDEF)의 에마뉘엘 주리앙 노사관계부차장은 "유럽연합 내 모든 기업들은 경영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혁신 절차를 밟고 있다"며 "신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을 따라가지 않을 경우 이제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뒤셀도르프(독일)·파리(프랑스)·런던(영국)=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