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奉鎭 < 비상근 논설위원·세종대 교수 > 김대중(DJ) 정부시절 국내 굴지의 자동차회사 최고경영자(CEO)였던 인사가 들려준 일화다. 노사문제를 많이 다뤄야 했던 이 CEO로서는 해당 장관을 만나야 했다. 그런데 이 장관은 한 가지 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노사문제를 다루다가 느닷없이 주제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대목에서 DJ를 치켜세우는 발언을,그것도 큰 목소리로 늘어놓는 것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주변 관료들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도청을 의식한 DJ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라는 답을 들었다. 이 장관의 'DJ 칭송'이 정말로 도청을 의식한 것인지는 본인만이 아는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장관의 진짜 속내와는 무관하게 그의 주변 관료들은 그의 시도 때도 없는 'DJ 예찬'이 도청을 역이용하기 위해 벌이는 가증스러운 아첨으로 읽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귀만 막고 종(鐘)을 훔치면 남들이 모를 줄 안다. 하지만 사실은 귀를 막은 자기만 모를 뿐 남들은 모두가 그 속셈을 뻔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엄이도령(掩耳盜鈴)' 아니겠는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간 상황설정 또한 가능하다. 국정원 도청 팀이나 또 그 결과를 보고서로 받아보는 고위층은 도청을 '아첨 확성기'로 역이용하려는 인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같은 구역질나는 도청보고서는 모두 걸러내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처럼 도청이 빚는 사회적 해악은 사람들 간 불신의 벽을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쌓는다는 데 있다. 국가안보상 도청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도청을 하지 않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안보전문가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청이 간첩을 잡는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정적과 언론인에 대한 동태파악, 또는 기업의 비리파악 같은 데 쓰이는 것이라면 분명 인권침해요 범법행위다. 간첩이라는 확신을 갖기 전까지 행해지는 간첩 혐의자에 대한 도청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가가 지금까지 우리가 고민해 온 일이고 또 앞으로도 두고두고 토론해야 할 과제인 것은 틀림없다. 최근 도청과 관련한 검찰의 행보에 김대중 전 대통령측이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전직 장관의 일화를 통해 우리는 DJ 정부 시절 고위관료들은 이미 조지 오웰식 "빅 브라더(도청장치)가 어딘가에 설치돼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심증과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실로서 인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DJ 정부 당시 언론사 간부였던 필자도 통화 도중 갑자기 감도가 현저히 뚝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누군가 우리 통화를 도청하는 모양인데 따로 직접 만나서 얘기하자"며 전화를 서둘러 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바로 미 민주당 선거본부인 워터게이트 호텔에 대한 도청과 관련한 것이었으며, 그 결과 그는 탄핵에 직면해야 했고 급기야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벌어진 2002년 말 대통령 선거는 과연 어떤 상황이었을까. 노무현정부의 탄생과 DJ 정부 하에서의 도청에는 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끈이 존재한다. 이런 함수관계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한, 현 정부가 DJ정부와의 절연성(絶緣性)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는 주목해 볼 일이다. 특히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명분 하에 우리의 거의 모든 치부를 부관참시(剖棺斬屍)해온 현 정부가 스스로의 투명성에는 어떤 잣대를 들이댈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어찌됐건 어지러운 사회정세, 낡고 썩은 도덕의식,그리고 봉건적 권위는 간신이라는 독버섯을 양산한다. 요즈음 우리는 도청이 이를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벼슬살이에는 세 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그 첫째는 사람을 알기 어렵고,둘째는 애증을 막기 어려우며,셋째는 바름과 위선을 가리기 어렵다"는 중국 진(晋)나라 대신 유의(劉毅)의 말이 새롭게 다가오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