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권 < 아주대 교수·재정학 > 올해 재정적자는 4조5000억원의 추경예산으로 해결한다. 내년 정부예산안을 보면 계획단계에서 9조원의 국채를 발행한다고 한다. 정부의 필요 재원이 반드시 세금일 필요는 없다. 국가경제를 위해서 세금규모보다 정부지출액이 클 수 있으며,적자재정도 중요한 거시경제정책의 수단이다. 재정정책에는 조세와 지출이라는 두 가지 정책수단이 있으며,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다. 조세정책은 현실 변화에 비탄력적인 반면 지출정책은 현실변화에 탄력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조세정책은 단기적인 경기부양이나 늘어난 지출규모를 보조하는 탄력적 정책수단이 돼서는 안되는 것이다. 재정적자가 매년 쌓이면 국가부채가 된다. 작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가부채규모는 GDP의 26.2%이고 선진국 모임인 OECD 국가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76.4%이니 좀 안심이 된다. 그런데 비록 국제적 기준에 따른 지표이지만 하나만 비교해서 안심하기에는 무언가 불안하다. 선진국에는 발생하지 않는,우리나라만이 갖는 재정상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4대 공적연금 책임준비금의 부족액이 그것으로,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을 들 수 있다. 선진국들의 제도는 매년 젊은 세대가 소득의 일부분을 늙은 세대로 이전하는 부과제도이므로 국가재정에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연금제도는 보험료를 낼 때 은퇴 후 연금지급액 규모를 정부가 확정하는 적립식이다. 따라서 보험료를 적게 거둬 은퇴 후 연금지급액을 많이 주겠다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재정적자를 수반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규모가 너무 커서 2030년대에 적자가 발생하고 2040년대에는 재원이 완전고갈되므로,필연적으로 정부재정에 엄청난 적자요인으로 작용한다. 빚이란 한번 맛들이면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는 특성을 가진다. 절대규모도 중요하지만 증가하는 속도를 조심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동안에 GDP 대비 국가부채규모가 7.2%포인트 증가한 반면,현 정부는 임기가 절반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10.9% 증가했다. 자주국방,복지,형평의 깃발을 앞세워 국가를 운영하려 하니 지출해야 할 영역이 너무도 많은 것이다. 그래서 추경예산의 허점을 이용해 정부지출을 늘리기도 한다. 세수추계는 미래에 대한 추계인 만큼 실제보다 적을 수도 많을 수도 있는 것인데,우리나라 세수추계는 왜 항상 실제보다 낮은 것인가. 세수추계액을 실제보다 높여서 잡고,이를 토대로 지출예산을 짜며,나중에 발생하는 적자는 추경예산을 통해 해결하니 아무런 잡음없이 정부지출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재정적자 문제해결은 정부지출을 줄이든지 세금을 늘리든지 둘중의 하나다. 정부는 세금을 늘리는 정책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그래서 형평성,고소득층의 탈세 등의 분위기가 압도하는 것이다. 세계의 조세정책방향은 세율인하 효율성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있는데,우리만 유일하게 거꾸로 가고 있다. 자주국방,복지,형평으로 뜨거운 가슴을 가진 정부 입장에서는 가진 자들이 조금 더 부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돈을 벌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가슴은 뜨겁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비교해서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낮으므로 높이자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결국은 정부지출을 줄여야 하지만,현 정부는 너무도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재정건전성의 문제는 정부역할에 대한 철학의 문제인 것이다. 세계화와 무한경쟁이란 환경 속에서 한 국가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정부역할에 대해 차가운 머리로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 전략적 국방,성장을 통한 복지,효율을 통한 형평이라는 깃발을 앞세울 때 비로소 재정적자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