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과 같은 에너지 개발기업들은 발전소를 세울 때마다 발생하는 골칫거리가 하나 있다. 일부 얌체 주민들이 발전소 건립 예정지역에 갑자기 양식장이나 농장을 세워 추가 보상을 요구하는 행태가 그것이다. 한전 등은 발전소 건설계획을 발표할 때 보상 대상과 액수를 정해 보상을 마친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발전소를 완공하는 데 통상 5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악용,농지나 양식장을 새로 짓거나 확장해 추가로 피해 보상을 받아왔다. 법원이 이런 피해를 인정해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002년부터 한 변호사의 노력으로 이 같은 나쁜 관행이 사라졌다. "발전소 건립과 같은 공익 사업은 최초의 정부 고시로 전체 보상구역이 확정되기 때문에 추가 보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법무법인 아태의 배성렬 변호사(39·사시 39회)는 이런 논리로 지난 2002년 추가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원심과 기존 대법원의 판례를 단숨에 뒤집었다. 이 판결로 발전소가 들어설 충남 보령지역의 주민에게 수십억원을 더 보상해줘야 했던 한전은 큰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이후 배 변호사는 원자력·수력 발전소 개발 때 피해보상으로 몸살을 앓아왔던 에너지 기업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에너지분야 전문변호사로 당당하게 자리잡은 것이다. 한국은 세계 7위의 에너지 소비국인데도 배 변호사와 같은 에너지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는 드물다. 에너지 개발이 공기업에 의해 추진돼 변호사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에너지 분야 사건의 경우 당사자 간 정치적 협상으로 해결되곤 해 에너지 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변호사는 거의 없다. "정부가 해외 에너지 개발에 눈을 돌리면서 에너지 분야의 법률 서비스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만큼 배 변호사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에너지 분야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던 2002년만 해도 한 달에 3∼4건에 불과했던 에너지 관련 법률자문 건수가 최근에는 월 10건 이상으로 늘었다. 3년 사이 배 변호사의 주가가 3배 이상 상승한 셈이다. 정식 법률고문 계약을 맺은 한전이나 석유공사의 수임료 상승분을 고려하면 이를 훨씬 넘는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해외 유전개발 사업에 참가할 때 유전국과 체결하는 계약서에 대한 자문도 배 변호사의 몫이다. "아직도 우리나라가 뛰어든 해외 유전 개발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에 대한 법률서비스를 외국 로펌들이 독식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분야에 대한 노하우가 결코 외국 로펌들에 뒤지지 않는데 언제까지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이런 황금시장을 내줘야 합니까." 정부는 현재 4%인 석유 자급률을 오는 2008년까지 10%로 끌어올리기 위해 기존 석유공사를 확대 개편해 '에너지 전문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이 사업에 10조원 이상을 쏟아붓기로 잠정 확정한 상태다. 에너지 분야가 변호사 시장의 블루오션이라는 말이다. 그는 "외국 로펌에 빼앗긴 해외 에너지 시장의 법률 주권을 가져와야 에너지 주권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동 지역의 현지법과 국제계약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배 변호사의 바람이기도 하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