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선 오랜 사회적인 논의를 거쳐 다양한 방식의 경영권 방어장치들을 관련 법률에 반영하고 있다.


일본은 올 들어 경영권 방어조항을 추가한 회사법 개정안을 공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기업들의 요구와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만 무성할 뿐 구체적인 법률검토 작업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시대를 맞은 만큼 변화된 경영환경에 맞는 법률 개정작업을 서둘러 경영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법성 논란 속 방어장치 속속 도입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비한 상장사들의 정관변경 움직임은 3~4년 전부터 시작됐다.


처음엔 테스텍 옵셔널벤처스 등 코스닥시장의 중소기업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기업도 정관변경에 나서,대한항공한진해운은 임원선임과 해임시요건을 보통결의에서 특별결의로 바꿨다.


신일산업 진흥기업 현대금속 등은 적대적 M&A로 경영진이 물러날 경우 통상적인 퇴직금 외에 최고 50억원의 돈을 추가지급토록 하는 '황금낙하산'제도를 정관에 명시했다.


인수자의 부담을 가중시키고,회사에 손해를 끼쳐 소액주주들을 기존 경영진 쪽으로 끌어오기 위한 포석이다.


코스닥기업 중에선 넥스콘테크놀로지 탑엔지니어링 엔이씨 등이 방어조항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관변경이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강성 변호사는 "임원선임의 경우 상법상 보통결의 사안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의결정족수를 특별결의 수준으로 높인 정관변경의 유효성에 대해 법원의 최종판단을 구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주주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무리한 정관변경은 무효판결이 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기준에 맞는 법개정 서둘러야


적대적 M&A 방어장치의 원조는 유럽이다.


많은 유럽국가들은 폭넓은 경영권 방어조치를 인정하고 있다.


스웨덴과 네덜란드는 주식 보유기간에 따라 의결권을 차등부여하고 있다.


스웨덴 에릭슨의 대주주는 3.5%의 지분으로 22.3%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일본은 지난 6월 의결권에 차등을 두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회사법 개정안을 공표했다.


M&A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는 미국에서조차 포이즌필을 허용,절반 정도의 기업이 도입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견대립이 워낙 첨예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법무부 산하에 회사법 개정위원회가 구성돼 내년 3월 임시국회를 목표로 법개정을 준비 중이지만 경영권방어 관련 건은 위원들 간 의견대립으로 아예 검토항목에서 제외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손쉬운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균관대 최준선 교수는 "의견대립이 심한 차등의결권 인정 등의 문제는 뒤로 미루더라도,이사회에 포괄적인 방어권을 인정하는 정도의 상법개정을 포함한 원칙적인 접근을 서둘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제3자에게 신주를 발행할 때도 재무적인 필요성이 있을 경우만 허용하는 등 적대적 M&A에 대한 이사회의 대응이 원천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충북대 송종준 교수도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사회의 대응책을 명시해 주고,증권거래법 외국인투자촉진법 등의 관련법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대부분의 국가는 적대적 M&A때'1주1의결권'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며 "글로벌 시대의 경영환경변화에 걸맞은 방향으로 회사법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