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본사 주필 > 정부와 기업은 어떤 관계인가. 참으로 막연한 의문이고 풀기 어려운 과제다.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을 연구하는 경제학의 변천도 어찌보면 정부와 기업,또는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해답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학파(學派)가 형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겪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자유방임에 가까운 고전학파 경제이론에서부터 적극적 정부역할을 강조한 케인스학파를 거쳐 합리적 기대이론이나 진화론, 요즈음의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그때그때의 시대상황과 여건에 따라 새로운 경제이론이 대두돼 왔다. 지난주 부산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부수행사로 열렸던 기업인회의에서 중국 알리바바닷컴의 잭 마 회장은 "기업이 정부와 결혼은 하되 사랑에 빠지면 안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경제주체인 정부와 기업,그리고 소비자의 공존관계는 불가분이지만 기업은 시장을 존중하고 사랑할 때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 보자면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많지 않아야 경제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물론 정부규제가 전혀 없는 자유방임의 상황은 생각해 볼 수 없는 과제다. 그렇다면 정부규제의 최적선택은 존재하는 것인가. 규제개혁이란 화두는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지금의 민관합동 규제개혁위원회 출범이 98년 김대중 정부 시절이고,그 이전엔 행정개혁위원회란 이름으로 규제철폐에 역점을 둬왔다. 그런데도 규제개혁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정부와 민간 모두 규제를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데 동의하고 노력하면서도 왜 줄어들지 않는 것인가. 여러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우선 기존의 규제가 주는 대신 새로운 규제가 더 생겨날 수 있다. 또 규제를 줄인다고는 하지만 행정절차나 구비서류 등 지엽적 행정개선에 그치고 핵심적 내용은 그대로 둔다고 한다면 기업들,또는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은 여전히 "규제가 까다롭다"일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기업들이 이보다 더 힘겹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시민사회단체들의 가시적 또는 묵시적 규제압력이 아닌가 싶다. 법에 명시되지 않은 요구사항들을 '국민 정서'를 내세워 기업을 압박할 때는 대책이 없다. 물론 사회단체들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활동이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치더라도 정부와 국회가 중심을 잡고 옳은 건 받아들이되 잘못된 건 하루빨리 시정토록 하는 신속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신호등 꺼진 교차로처럼 차량이 뒤엉키고 질서가 무너져 혼란에 빠지게 된다. APEC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폴 제이콥스 퀄컴 사장이 "한국에선 시민단체 국회 정부 등의 개입이 심해 외국기업의 투자의사 결정에 불확실성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렵지만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현실을 어느정도나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곱씹어 볼 만한 언급임에 틀림없다. 사실 정부는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공복(公僕)이라 스스로 일컬으면서도 실제로는 기업과 소비자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선생님이나 지도자로 군림하려 한다. 이런 자세가 변하지 않는 한 제아무리 강도높은 규제개혁방안을 마련하라고 다그쳐도 실효성있는 대안이 나오기는 어렵다. 규제개혁은 정부가,그리고 정치권력이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추진한다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기업규제 철폐'가 일상의 대화처럼 오가지만 진전은커녕 뒷걸음질하는 것 같은 요즈음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가장 초보적인 근본 문제점부터 다시 짚어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