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서비스 마인드’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들이다.라싸를 떠나 티베트의 제3도시 갼체(江孜)로 가는 길.석벽에 거대한 불상을 새긴 네탕대불을 지나 취수이(曲水)현에 이르자 도로 왼편에서 함께 달리던 라싸강이 얄룽창포강으로 합류한다.갼체로 가려면 얄룽창포강의 3대 대교 가운데 하나인 취수이대교를 건너야 하는 상황.


그런데 다리 앞에 와서야 공사중이니 돌아서 가라고 경비병이 알려준다.갈림길에 안내판을 세워두면 될 것을….하긴 도로공사를 할 때에도 통행하는 차량들이야 불편하건 말건 전 구간을 몽땅 파 뒤집어놓는 사람들이니 말해 무엇하랴.



[ 사진 :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온 가족과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이삭을 털고 검불을 날리며 보리의 일종인 칭커의 알곡을 수확하다가 새참을 먹고 있다.어린 아이까지 모두 나와 함께 일하고 나누는 모습이 여유롭다.]


결국 왔던 길을 무려 80km나 돌아 얄룽창포대교를 건너 간체로 향한다.


서부 티베트에서 시작해 인도,방글라데시까지 총길이가 2900km에 이르는 얄룽창포강은 참으로 유장하다.


평균 고도가 4000m에 달하는 세계 최고지의 강으로서 대협곡을 이루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산과 산 사이의 거대한 들판을 흐르는 물이다.


그 폭이 너무나 넓어서 한 장의 사진에 다 담기가 어려울 정도다.


드넓은 강물이 저 멀리 설산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거기에다 은행잎처럼 노랗게 물들고 있는 백양나무 가로수와 가을바람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들….왔던 길을 되돌아서 강을 건너야 했던 불쾌함은 이 한 폭의 풍경화에 묻혀버렸다.


얄룽창포강을 뒤로 하자 이번에는 거대한 산을 오를 차례다.


드디어 해발 4990m의 깡발라산 정상.산정을 넘어서자 곧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늘보다 더 푸른 빛의 커다란 호수.티베트의 3대 성호(聖湖) 중의 하나인 얌드록초 호수다.


티베트인들이 '푸른 보석'이라고 부르는 얌드록초 호수는 동서 길이 130km,남북 너비 70km에 총면적이 638㎢에 이르는 저농도 염호(鹽湖)다.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얌드록초는 정말 푸르고 정갈하고 아름답기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다시 꼬불꼬불 길을 내려가자 호수 주변에는 거대한 천연 목장이 펼쳐져 있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와 호수에서 노니는 야생 오리떼 등이 평화로운 정경을 연출한다.


2년 전에 왔을 때만 해도 비포장이었던 얌드록초의 호반 도로는 말끔하게 포장돼 있다.


라싸에서부터 탐험대와 동행키로 한 중국 국가체육총국 소속의 중국국제체육여유공사 이원 총경리는 "작년에 중국 정부가 도로를 포장하고 정비했다"면서 "양줘잉호(洋卓雍湖·얌드록초의 한자 발음)는 티베트의 성호로서 티베트인들은 여기서 마음대로 목욕을 하거나 고기잡이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달라이라마와 함께 티베트 불교를 이끄는 판첸라마가 죽으면 그가 어디서 누구로 환생할지를 이 호수가 알려준다는 것이다.


호수 인근의 랑카 마을을 지나자 비포장 도로가 시작된다.


해발 5042m의 카로라산을 넘어 간체에 도착하자 높다란 언덕 위의 성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1904년 티베트에 쳐들어온 영국군에 맞서 티베트인들이 최후까지 항전하다 남은 사람들은 절벽 아래로 투신,자결했던 종산(宗山) 유적지다.


간체를 벗어나자 도로 주변의 들녘에선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티베트의 주요 농작물인 칭커를 수확하는 현장이다.


보리의 일종인 칭커는 이곳 사람들의 주식인 짬바를 만드는 재료로 티베트인들은 칭커를 빻아 가루로 만든 뒤 뜨거운 물에 개어 먹는다.


수확의 현장에는 온 가족과 동네 사람이 다 모였다.


탈곡기가 쉼 없이 보리 이삭을 털어내면 사람들은 바람에 검불을 날려 알곡만 추려낸다.


경운기에 바람개비를 달아 검불을 날리기도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자연풍이다.


일꾼들을 위해 뜨거운 차와 짬바를 내오고,모두 둘러앉아 먹는 모습이 우리네 농촌 풍경과 다르지 않다.


새참을 내온 딸이 땀이 송송 맺힌 아버지의 얼굴을 닦아주며 내미는 찻잔에는 사랑이 함께 담겼으리라.


티베트의 제2도시 시가체를 지나서도 추수 풍경은 계속된다.


시가체 인근 들판에서 한창 작업 중인 충다(32) 라바츠던(28) 형제는 "올해는 강우량이 부족해 수확이 작년보다 못하다"며 "1무(畝)에 800~900근(450㎏가량) 나올 것"이라고 했다.


칭커 한 근의 값은 90전으로 작년에는 1500근을 팔았는데 올해는 적어도 75전은 받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대개 티베트 농가는 1인당 4~5무의 농사를 짓는데 이들 형제의 농지는 20무에 달한다는 설명.무와 감자도 먹을 만큼은 심어 거뒀고,술도 빚어놨다며 "월동 준비는 잘 된 편"이라고 덧붙였다.


아이들까지 모두 나와 큰 검불은 바람에 날리고 작은 검불은 체로 거르며 가을걷이에 뛰어든 모습이 정겹다.


예고도 없이 나타난 이방인들에게 아무런 거리낌없이 작업과정을 설명해주고 활짝 웃는 이들의 모습에 우리네 농촌같은 넉넉한 인심이 담겨있다.


땅은 정직하고 그 땅 위에 사는 사람은 대지처럼 여유롭다.


시가체(티베트)=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