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노동개혁 나섰다] (6) 복수노조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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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럽 노동현장에서 최대 골칫거리는 복수노조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조합이 가장 많은 프랑스의 경우 난립된 노조로 인해 기업들마다 곤욕을 치르고 있다.
조합원 확보를 위한 노노 간 세력 다툼과 이로 인한 노사관계 불안으로 많은 생산현장이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노동운동 역사가 100년이 넘었지만 개별 기업까지 침투한 복수노조 체제로 인해 상당한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경영자협회(MEDEF)의 에마뉘엘 주리앙 노사관계부장은 "노조가 많다고 해서 민주주의 문화가 성숙되는 게 아니다"며 "오히려 여러개의 노조가 난립하면서 민주주의 발전을 해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근로자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시행 중인 복수노조 제도가 오히려 기본권을 침해하는 해악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프랑스에서 사용주로부터 협상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는 상급단체는 5개.온건파인 사회당 계열의 민주노총(CFDT)과 강경파인 공산당 계열의 노동총연맹(CGT)이 노동계를 양분하고 있다.
노동자의 힘(FO),프랑스기독교노총(CFTC),프랑스관리직총동맹(CFC-CGC) 등도 상급단체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교섭권이 없는 G10과 UNSA 등 2개의 노동단체까지 합할 경우 모두 7개의 노조가 활동하는 셈이다.
노조 난립으로 인한 폐해는 조합원 확보를 위한 헤게모니 싸움과 노사 교섭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로 개별사업장에서 벌어지는 노노 간 다툼은 노조의 생존권이 걸려 있는 만큼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고질병이다.
프랑스민주노총(CFDT)의 리자 페슈로 국제협력부장은 "프랑스에서의 노노 간 계파싸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하다"며 "좀더 많은 조합원을 확보하려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노조가 많다 보니 교섭문제 역시 노사관계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상급단체와 산별노조 차원의 교섭에서는 사용자단체가 인정한 5개 상급단체 노조 중 노선을 같이 하는 3개 연합노조만이 참여할 수 있다.
연합노조로 구성된 교섭팀은 체결될 때까지 공동으로 대응한다.
문제는 상급단체에 딸린 지부(개별사업장 노조) 협상이다.
대부분 사업장에서는 5개 상급노조로부터 지침을 받는 지부내 노조 모두가 노사협상 과정에 참여한다.
이러다 보니 요구조건이 제각각이어서 통일된 목소리가 나오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협상을 벌이는 사용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섭체결 과정에서도 많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교섭에 참여한 노조는 규모가 작더라도 사용자측과의 교섭체결권이 주어진다.
따라서 협상 중 한 개 노조라도 사용자에 유리한 조건으로 체결을 해버리면 다른 노조는 앉아서 당할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5월 거부권 조항을 도입했다.
즉 해당 사업장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먼저 체결된 협약을 거부할 경우 이를 취소시킬 수 있도록 했다.
노조의 난립은 노노갈등뿐 아니라 노사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프랑스의 파업 발생 건수는 2001년 기준 2131건에 달해 주요 OECD국 가운데 가장 많았다.
파업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462건)보다도 4배 이상 많은 수치다.
유럽 노동현장의 또 다른 변화는 교섭구조가 산업별 체제에서 기업별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교섭의 분권화' 현상은 근로조건을 한 데 묶는 산별교섭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확산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임금 및 노동조건을 최소 수준에서 보호하는 산별협약이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기업들의 주장이 반영된 결과다.
산별교섭이 정착돼 있는 독일도 이런 추세에서 예외는 아니다.
폭스바겐 지멘스 등 대기업들은 이미 개별교섭을 체결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많은 대기업들이 사용자단체에서 탈퇴하고 있다.
노사가 맺은 산별협약을 따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경영난을 겪는 기업들이 늘면서 산별교섭 체결 내용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협상을 체결하는 이른바 '개방조항'을 도입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개방조항의 확산은 산별교섭의 핵심인 노동자연대원칙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독일 노동현장의 분권화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파리(프랑스)=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