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가경쟁력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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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형 < 서울대 교수·공법학 >
같은 조건의 두 나라가 동일한 시장에서 경쟁을 한다.
그 중 한 나라는 의회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잘 정착돼 있는데 비해,다른 나라는 아직 민주주의로 완전히 이행하지 못하고 행정부와 관료 중심의 개발독재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작용하겠지만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는 시간과 비용만 가지고 본다면, 일단 단기적으로는 개발독재가 훨씬 우세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이렇듯 비용증가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국가경쟁력 측면에서는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개발독재를 넘어 민주법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발전의 공식을 신봉해 온 것일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개발독재의 경쟁우월성이 단기에 그치거나 전체 경제의 효율성에 비해 제한된 분야에서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거꾸로 민주법치의 비용이 단기적으로는 경쟁에 불리하게 작용하겠지만,장기적으로는 경쟁의 우위를 가져오리라는 기대와 상통한다.
마찬가지로 그 생각은 그 비용이 필경 어느 시점부터는 감소해 오히려 전체적으로 편익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희망적 전망과도 맞물려 있다.
말하자면 어느 시점부터는 거래비용이 감소하기 시작해 최소화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법치의 정착은 전략적으로 경쟁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3세계에 속했던 나라 가운데 민주법치의 수준에서 우리에 필적할 나라는 거의 없다.
중국의 누군가는 죽었다 깨나도 한국을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로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잡아넣고 전직 대통령들을 형사처벌하는 일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고 법치주의가 정착됐다고 하지만,아직까지는 비용증가의 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거기에 정책결정이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걸핏하면 지연되는 일이 빈발하니 같은 조건에서 우리를 넘보는 나라,특히 개발독재와 같은 단기적 경쟁우월성을 갖춘 나라와의 경쟁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다.
거래비용 최소화에 따른 경쟁의 효율을 누릴 수 있는 때는 언제 올까.
피와 땀으로 경제를 일구어 오면서도 늦게나마 최소한의 민주법치 수준을 갖췄는데,상승효과보다는 오히려 길항효과가 너무 오래,지루하게 나타나고 있으니 전망은 그저 암담할 뿐이다.
국정감사 철이면 입법,예산 등 국회의 다른 기능을 위시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국정이 마비되다시피 한다.
같은 조건에서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는 나라와 경쟁하게 된다면 결과는 뻔하다.
원래는 국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국회 본연의 사명이라 하여 갈채를 받았지만,이젠 가슴 답답한 국정비효율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비쳐진다.
공식적인 법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정책들이 집행과정에서 흔들리고 다른 나라 같으면 절차를 통한 정당성을 획득해 착착 진행됐을 국책사업들이 교착상태에 빠지기 일쑤다.
다른 나라 같으면 보상을 해주지 않아도 되는 입지결정도 파격적인 보상책 없이는 제대로 진행되는 법이 없다.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좀먹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좁아터진 구석에 갇혀 서로 멱살잡이를 하느라 전체를 못 보거나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심각하게 점검하고 문제해결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누가 그 일을 할 것인지가 중요한데,의당 대통령이 이 문제를 맡는 것이 정도지만,정치적 이해관계로 논란이 따를 테니 여야를 포함해 사회ㆍ경제ㆍ문화ㆍ노동ㆍ학계 등 각계각층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범국민적 국가경쟁력 논의기구를 만들어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날로 격화되는 경쟁의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낙오되지 않도록 국가경쟁력을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