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기업들에 20년은 흥망성쇠를 수없이 겪을 만큼 긴 세월이다. 그 사이에 유럽 대륙의 간판 기업도 확 바뀌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덩치가 큰 '톱 10' 기업 리스트에 제조업 왕국으로 불렸던 독일 기업들이 다 빠지고 스위스 기업들이 대거 올라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미국의 펀드업체인 피델리티인터내셔널의 조사 결과를 인용,시가총액 기준 유럽 상위 10대 다국적 기업(영국 제외) 중 스위스 기업이 4개로 가장 많았다고 보도했다. 20년 전 조사에서 단 한개의 스위스 기업만이 상위 10대 기업에 들었던 것과는 상전벽해의 변화다. FT는 "이번 조사는 다국적 기업의 천국이라는 스위스의 명성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위스 다음으로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각각 2개,이탈리아와 핀란드가 각각 1개의 '톱10'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0년 전 시가총액 기준 상위 10대 유럽기업 중 7개를 거느리고 있던 독일은 단 한개의 '톱10'기업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FT는 "대륙의 얼굴 기업이 이렇게 달라진 것은 유럽 기업활동의 중심이 자동차 엔지니어링 화학 등 전통 업종에서 통신 제약 바이오 등의 업종으로 급속히 재편됐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독일기업이 대거 탈락한 것은 경직된 노동시장 등으로 대표되는 '독일병'이 경쟁력을 떨어뜨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년 전 2위를 차지했던 다임러 벤츠는 미국 크라이슬러와의 합병에도 불구,올해는 순위가 21위로 떨어졌고 전기전자 업체인 지멘스는 3위에서 11위로 추락했다. 당시 10위권에 들었던 알리안츠(4위) 도이체방크(5위) 바이엘(8위) 바스프(9위) 훽스트(10위)도 모두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시가총액 기준 현재 유럽 대륙 최고의 기업은 프랑스의 석유업체 토탈로 시가총액이 1470억유로(약 179조원)에 달한다. 토탈은 20년 전인 1985년 88위에 불과했으나 그동안 대규모 기업합병으로 규모를 확장한 데다 최근 고유가로 주가도 급등,1위에 올랐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업체 노바티스가 시가총액 2위에 올랐고 세계 최대 식품업체 네슬레가 3위에 포진했다. 조류 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의 특허권을 가진 스위스 제약업체 로슈가 6위,세계적 투자은행 UBS가 7위를 각각 기록했다. 이 밖에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 아방티스(4위),이탈리아 에너지업체 ENI(5위),스페인 금융그룹 샌탠더(8위),스페인 통신업체 텔레포니카(10위),핀란드 휴대폰 업체 노키아(9위) 등이 '빅10'에 들었다. 20년 전 유럽 최대 기업이었던 에너지 업체 로열더치셸은 시가총액면에서는 여전히 유럽 1위 기업이나 올해 런던증권거래소에 단일 상장하면서 이번 순위에서는 빠졌다. 김선태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