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글로벌 전자大戰] (3) 벼랑끝 PC '싸게 더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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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PC 시장은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출혈경쟁이 난무하는 '붉은 바다'(Red Ocean)로 변했다.
제품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곤두박질치고 잘나가던 업체들이 속속 떨어져 나갔다.
PC산업이 약간의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조립산업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PC업계에서는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다' '운영체제(OS) 만드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칩셋 생산하는 인텔만 돈 벌게 해주고 있다'는 뼈있는 농담이 나돌았다.
세계 PC 시장이 정체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2000년 말부터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세계 PC 출하량이 4% 이상 줄면서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시장 포화와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가 주 원인이었다.
PC산업은 이후에도 5년째 10% 안팎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답보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이 와중에 IBM 도시바 후지쓰 NEC 등 한때 세계 PC 시장을 주름잡았던 업체들은 잇따라 밀려났다.
반면 미국 델컴퓨터,중국 레노버 등이 막강한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도약하고 있다.
PC 시장 재편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07년까지 세계 10대 PC 메이커 중 3개 정도는 철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세계 PC 시장의 판도 변화
세계 PC 시장에서 '태풍의 핵'은 중화계 업체들이다.
시장점유율 변화를 분석해보면 중화계의 약진이 눈에 띈다.
특히 중국 레노버와 대만 에이서가 돋보인다.
올초에 각각 9위와 5위에 머물렀던 레노버와 에이서는 2분기에 나란히 '4대 천왕'으로 등극했다.
'레전드(렌샹)'란 브랜드로 알려진 레노버는 지난 5월 초 IBM PC사업부 인수작업을 끝내고 단숨에 '세계 3대 메이커'로 떠올랐다.
지난 2분기에 7.6%의 점유율로 HP(15.6%)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레노버는 2002년 PC산업의 원조인 IBM PC사업부를 인수키로 계약을 맺었다.
세계 PC 업계는 컴팩이 HP에 넘어간 것보다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에이서는 2분기에 후지쓰를 제치고 4위로 뛰어올랐다.
이 회사는 한국에선 이렇다할 실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자국의 탄탄한 부품산업을 배경으로 세계 PC 시장에서 선두권을 지켜왔다.
1997년에는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PC 사업을 인수한 바 있다.
레노버와 에이서의 돌풍이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직 선두 델(19.3%)과의 점유율 차가 큰 편이다.
델은 중간 유통단계를 생략한 '다이렉트 모델'로 중국 업체들 못잖은 가격경쟁력을 갖췄다.
델과 레노버 등이 앞다퉈 PC 가격을 낮추면서 경쟁 업체들의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코너에 몰린 국내 메이커
국내 PC 업체들은 2000년 이후 시장이 정체된 가운데 고전하고 있다.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해외에서 알아주는 업체는 하나도 없다.
중국 업체 등에 밀려 손바닥 만한 국내 시장에서 더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형국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중소 업체들이 잇따라 쓰러졌다.
2003년에 나래앤컴퍼니,로직스,컴마을 등이 회사를 정리하거나 파산 신청을 했다.
올해 들어서는 현대멀티캡(1월)과 현주컴퓨터(4월)가 부도를 냈고 국내 2위 업체인 삼보컴퓨터(5월)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델과 레노버의 '가격 공세'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 델은 맨먼저 노트북 '100만원대' 벽을 깨부수더니 최근에는 개인용 노트북을 82만원대에 내놓았다.
레노버는 내년 초를 목표로 대대적인 가격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PC 업계 관계자는 "PC 품질이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되면서 성능을 앞세우는 브랜드의 위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며 "이제 국내 업체들은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 사업을 계속할 것인지,이쯤에서 사업을 접든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고 말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