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 변신] 가시오갈피로 재기한 박정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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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할 때보다 더 재미있는 거 같아요.
물론 돈벌이는 그 때만 못하지만 그래도 짭짤합니다.
젊었을 때 손도 대지 않았던 삽을 잡고 토종 가시오갈피 농장을 돌보며 전원 속에서 사는 행복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죠."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용호리 용화산 자락 해발 450m 중턱에 자리한 '화천가시오갈피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식씨(52).그는 10여년 전만 해도 1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수십 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전자부품 하청업체 사장이었다.
[ 사진 : 박정식씨가 자신이 일군 ‘화천가시오갈피농장’에서 부인과 함께 토종 가시오갈피를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 ]
"모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엄청난 부채를 떠안고 길거리로 나앉았지요.
남은 거라고는 현금 20만원과 달랑 봉고차 한 대뿐이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박씨는 빚을 갚기 위해 봉고차에 잡화를 싣고 다니며 행상을 시작했지만 실의에 빠져 장사는 뒷전이었다.
몇 년을 매일 술에 의지하다 보니 몸도 만신창이가 됐다.
"소주 반 병만 마셔도 피곤해 사흘가량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술독 때문에 얼굴이 숯검정처럼 까맣게 변했지만 그냥 죽고 싶어 병원에도 가지 않았지요."
물건을 팔러 시골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만난 약초 캐는 노인이 시커멓게 변한 얼굴을 보고 기력을 회복하는 데 그만이라며 가시오갈피를 건네줬다.
"가시오갈피를 달여먹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같이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몸이 건강해지니까 의욕도 새롭게 샘솟더군요.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직접 효능을 체험한 가시오갈피로 승부를 걸어보자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박씨는 그길로 강원도 험한 산골짜기를 오르내리며 토종 가시오갈피 군락지를 찾아다녔다.
시중에 범람하고 있는 일반 오갈피나 러시아산 가시오갈피와는 차별화된 우수한 약효를 지닌 순수 토종을 찾아내 대량 재배를 해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동생에게 돈을 빌려 땅값이 싼 산비탈 황무지 5000평도 마련했다.
그러나 가시오갈피는 순수 토종이 워낙 귀하다 보니 채집에 한계가 있었다.
가늘고 잔잔한 가시가 촘촘하게 박힌 순수 토종을 고집하기 위해 북한지역 백두산에서 채집한 2500그루의 묘목을 들여왔다.
심는 방법조차 몰라 무조건 땅을 파고 묻었지만 다행히 척박한 돌밭에서도 잘 자라는 습성 때문에 별 탈 없이 성장했다.
이번에는 판로가 문제였다.
"진액을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둘씩 직거래로 팔기 시작했지요.
약효를 본 사람들이 이웃에 소개를 해줘 이제는 고정고객만도 꽤 됩니다." 좀더 간편하게 차로 마실 수 있도록 티백 제품도 만들었다.
지난해부터는 소량이지만 가시오갈피 비누도 만들어 팔고 있다.
기능성 비누는 가시오갈피가 간질환을 비롯 항스트레스 면역력강화 노화방지 이뇨 변비는 물론 아토피 여드름 등 각종 알레르기성 피부질환에도 효험이 있다는 동의보감과 신농본초경의 기록에 착안해 만들게 됐다.
박씨는"여드름 아토피 등 피부트러블 때문에 가시오갈피 비누를 사용해 본 사람들이 개당 몇 만원씩하는 외제 약용비누보다 훨씬 낫다며 다시 찾을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시오갈피에 미쳐 열심히 뛰어다니자 화천군청도 발벗고 나서 기술지도와 판로지원을 해주고 있다.
화천군 농업기술센터 김종학 계장은 "박씨가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은 농장에서 차를 개발할 당시 매우 힘들어 했는데 그 당시 기술지도를 통해 양질의 차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전했다.
현재 제품은 파로호생태마을 홈페이지(paroho.invil.org)를 통해 판매하고 있고 농촌진흥청 농업진흥센터에서도 토종 가시오갈피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박씨의 개인 홈페이지를 제작 중이다.
정갑철 화천군수는 "지역 특산물로 육성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며 "외부 손님들에게 화천을 대표하는 선물로 증정한다"고 귀띔했다.
"요즘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저를 가장 부러워 합니다.
명예퇴직이니 뭐니 해서 가장 불안한 나이 아닙니까.
아직까지는 주위 사람이나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한테만 조금씩 팔고 있지만 연소득이 1억원이 넘으니까 먹고 살만 합니다.
이만한 소득을 올려가며 자연을 벗삼아 지내니 부러울 게 없습니다."
처음 농장을 개간할 때 맨손으로 시작해 4년 동안 비닐하우스 움막에서 생활해야 했던 그는 소득이 늘어나면서 농장 한 켠에 30여평의 번듯한 전원주택도 지었다.
박씨는 "올해 딸아이가 수시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며 "먹고사는 데 부족함이 없고 자식을 서울 유학까지 보낼 수 있는 정도가 됐다"며 뿌듯해 했다.
이 지역에선 '가시오갈피 박사'로 통하는 박씨는 지난 학기 강원대 임학과 3,4학년생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토종 가시오갈피 재배법'에 대한 특강도 했다.
자신의 산경험을 통해 쇠퇴일로에 있는 임업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033)442-4313
화천=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
물론 돈벌이는 그 때만 못하지만 그래도 짭짤합니다.
젊었을 때 손도 대지 않았던 삽을 잡고 토종 가시오갈피 농장을 돌보며 전원 속에서 사는 행복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죠."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용호리 용화산 자락 해발 450m 중턱에 자리한 '화천가시오갈피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식씨(52).그는 10여년 전만 해도 1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수십 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전자부품 하청업체 사장이었다.
[ 사진 : 박정식씨가 자신이 일군 ‘화천가시오갈피농장’에서 부인과 함께 토종 가시오갈피를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 ]
"모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엄청난 부채를 떠안고 길거리로 나앉았지요.
남은 거라고는 현금 20만원과 달랑 봉고차 한 대뿐이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박씨는 빚을 갚기 위해 봉고차에 잡화를 싣고 다니며 행상을 시작했지만 실의에 빠져 장사는 뒷전이었다.
몇 년을 매일 술에 의지하다 보니 몸도 만신창이가 됐다.
"소주 반 병만 마셔도 피곤해 사흘가량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술독 때문에 얼굴이 숯검정처럼 까맣게 변했지만 그냥 죽고 싶어 병원에도 가지 않았지요."
물건을 팔러 시골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만난 약초 캐는 노인이 시커멓게 변한 얼굴을 보고 기력을 회복하는 데 그만이라며 가시오갈피를 건네줬다.
"가시오갈피를 달여먹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같이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몸이 건강해지니까 의욕도 새롭게 샘솟더군요.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직접 효능을 체험한 가시오갈피로 승부를 걸어보자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박씨는 그길로 강원도 험한 산골짜기를 오르내리며 토종 가시오갈피 군락지를 찾아다녔다.
시중에 범람하고 있는 일반 오갈피나 러시아산 가시오갈피와는 차별화된 우수한 약효를 지닌 순수 토종을 찾아내 대량 재배를 해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동생에게 돈을 빌려 땅값이 싼 산비탈 황무지 5000평도 마련했다.
그러나 가시오갈피는 순수 토종이 워낙 귀하다 보니 채집에 한계가 있었다.
가늘고 잔잔한 가시가 촘촘하게 박힌 순수 토종을 고집하기 위해 북한지역 백두산에서 채집한 2500그루의 묘목을 들여왔다.
심는 방법조차 몰라 무조건 땅을 파고 묻었지만 다행히 척박한 돌밭에서도 잘 자라는 습성 때문에 별 탈 없이 성장했다.
이번에는 판로가 문제였다.
"진액을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둘씩 직거래로 팔기 시작했지요.
약효를 본 사람들이 이웃에 소개를 해줘 이제는 고정고객만도 꽤 됩니다." 좀더 간편하게 차로 마실 수 있도록 티백 제품도 만들었다.
지난해부터는 소량이지만 가시오갈피 비누도 만들어 팔고 있다.
기능성 비누는 가시오갈피가 간질환을 비롯 항스트레스 면역력강화 노화방지 이뇨 변비는 물론 아토피 여드름 등 각종 알레르기성 피부질환에도 효험이 있다는 동의보감과 신농본초경의 기록에 착안해 만들게 됐다.
박씨는"여드름 아토피 등 피부트러블 때문에 가시오갈피 비누를 사용해 본 사람들이 개당 몇 만원씩하는 외제 약용비누보다 훨씬 낫다며 다시 찾을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시오갈피에 미쳐 열심히 뛰어다니자 화천군청도 발벗고 나서 기술지도와 판로지원을 해주고 있다.
화천군 농업기술센터 김종학 계장은 "박씨가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은 농장에서 차를 개발할 당시 매우 힘들어 했는데 그 당시 기술지도를 통해 양질의 차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전했다.
현재 제품은 파로호생태마을 홈페이지(paroho.invil.org)를 통해 판매하고 있고 농촌진흥청 농업진흥센터에서도 토종 가시오갈피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박씨의 개인 홈페이지를 제작 중이다.
정갑철 화천군수는 "지역 특산물로 육성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며 "외부 손님들에게 화천을 대표하는 선물로 증정한다"고 귀띔했다.
"요즘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저를 가장 부러워 합니다.
명예퇴직이니 뭐니 해서 가장 불안한 나이 아닙니까.
아직까지는 주위 사람이나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한테만 조금씩 팔고 있지만 연소득이 1억원이 넘으니까 먹고 살만 합니다.
이만한 소득을 올려가며 자연을 벗삼아 지내니 부러울 게 없습니다."
처음 농장을 개간할 때 맨손으로 시작해 4년 동안 비닐하우스 움막에서 생활해야 했던 그는 소득이 늘어나면서 농장 한 켠에 30여평의 번듯한 전원주택도 지었다.
박씨는 "올해 딸아이가 수시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며 "먹고사는 데 부족함이 없고 자식을 서울 유학까지 보낼 수 있는 정도가 됐다"며 뿌듯해 했다.
이 지역에선 '가시오갈피 박사'로 통하는 박씨는 지난 학기 강원대 임학과 3,4학년생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토종 가시오갈피 재배법'에 대한 특강도 했다.
자신의 산경험을 통해 쇠퇴일로에 있는 임업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033)442-4313
화천=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