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을 가다] <15ㆍ끝> 호주 멜버른 '퀸 빅토리아 마켓'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호주의 전통 부호(富豪)들이 모여 살고 있는 멜버른.뉴욕 맨해튼의 피프스(5th) 애브뉴를 뺨치는 초호화 패션몰 거리인 콜린스가(Collins street)로부터 북쪽으로 불과 네 블록 떨어져 있는 프랭클린(Franklin)가에 들어서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재래시장을 만난다.
2만1000평의 방대한 부지에 펼쳐져 있는 호주 최대의 전통시장인 퀸 빅토리아 마켓(Queen Victoria Market)이다.
1878년 3월에 개장한 이래 1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1000여명의 입주 상인 대부분이 '스톨(stall)'이라고 불리는 재래식 매대(賣臺)에서 전통 노점 거래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독특한 곳이다.
시장을 처음 조성했을 때의 건물들이 그대로 보전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많은 상가 건물들이 빅토리아 주(州)정부로부터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퀸 빅토리아 마켓은 물건을 팔고 사는 '시장'인 동시에 그 자체로 풍부한 눈요깃거리를 제공한다.
하루 평균 4만명이 넘는 방문객들 중에서 상당수는 볼거리를 즐기기 위해 들르는 국내외 관광객들이라는 게 시장 총지배인인 짐 모너핸(Jim Monaghan) 마켓 CEO의 귀띔이다.
이곳은 시장의 규모와 역사만큼이나 거래되는 상품 가지 수도 엄청나다.
과일 야채 육류 콩 수산물 유제품 등의 식료품과 전자제품,의류,신발,장난감,인테리어 용품,주방용품,가죽제품,장신구,골동품,화훼류와 관상용 식물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물건을 파는 만물시장이다.
판매하는 품목이 수만 가지를 넘다 보니 각 판매대의 상인들은 요일마다 진열 상품을 바꿔 내놓는다.
시장 한복판에 있는 'It's Australia'라는 가게는 이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온갖 진기한 용품을 갖추고 있어 '튀는' 기념품을 쇼핑하려는 관광객들로 하루 종일 북적댄다.
'없는 게 없다'고 할 정도의 만물시장이지만 그 중에서도 쇼핑객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청정우'를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우는 호주산 쇠고기 등 각종 고기를 파는 육류(Meat)관.쇠고기에서부터 토끼 캥거루에 이르기까지 온갖 동물의 수백 가지 부위 고기들을 맛깔스럽게 진열해 놓고 내방객들을 유혹한다.
호주는 물론 스위스 네덜란드 등 각 나라산 치즈 등의 유(乳)제품들도 풍부하다.
퀸 빅토리아 마켓의 또 다른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는 세계 최대의 유기농산물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32㎡의 매장에 호주 전역에서 생산한 각종 과일과 야채들이 빼곡히 진열된 채 '웰빙 식객(食客)'들을 기다린다.
환경과 농업 보호를 위해 어느 나라보다 까다로운 규정과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답게 육류관 한 편에도 유기(organic) 방식으로 사육한 소와 닭 양 캥거루 등의 고기만을 따로 파는 매장이 쇼핑객들로 북적거린다.
호주축산공사에서 시장 점검을 위해 들른 웬디 보스 매니저는 "유기 사육 쇠고기는 일반 쇠고기보다 50% 이상 비싼 값에 팔리지만 뛰어난 육질(肉質)과 맛에 매료된 단골 고객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들려준다.
전통을 강조하는 시장답게 130년째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휴무'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퀸 빅토리아 마켓만의 특색을 두드러지게 한다.
개장 초기 주중(週中) 내방객들이 충분하지 않자 수요일 시장 문을 닫았던 것을,요일을 가리지 않고 장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붐비는 요즘에도 그대로 이어가고 있을 만큼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집착이 강하다.
이처럼 '옛것'에 대한 보전 욕구가 강한 퀸 빅토리아 마켓이 하마터면 송두리째 문을 닫을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70년대 멜버른 시 당국에서 도심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시장 일대를 호텔과 비즈니스 센터,현대식 쇼핑몰 등이 들어서는 복합 비즈니스 콤플렉스로 전면 개편하는 계획을 발표했던 것.그러자 멜버른 시민들로부터 "개발의 광풍(狂風)에 밀려 살아 있는 문화유산을 파괴하겠다는 것이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결국 시 당국은 420만 호주달러(약 34억원)를 들여 육류관 등 일부 매장 코너를 현대식으로 새단장하는 등 부분적인 보수 공사를 하는 것으로 물러섰다.
퀸 빅토리아 마켓의 모너핸 CEO는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장 최고의 자산"이라며 "현대식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에서는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만 사고 돌아가지만 퀸 빅토리아 마켓에서는 다양한 매장과 즉석에서 물건값 흥정 등 풍부한 볼거리와 쇼핑하는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에는 한국계 상인들도 대여섯 명이 입점해 있다.
그 중에서도 일교차가 큰 멜버른 등 호주 일대의 날씨에 착안해 한국에서 핫팩(hot pack·찜질용구)을 들여다 판매하고 있는 '신 바이오'의 폴 신 사장이 가장 성공한 경우로 꼽힌다.
신 사장은 "한국에서 매달 컨테이너 한 대 분량의 핫팩을 들여다 월 평균 5만 호주달러(약 4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며 "한국 상품에 대한 호주 사람들의 신뢰가 높아 매장을 늘려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멜버른(호주)=이학영 생활경제부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