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원금 1억5000만원,기간 2개월,수익률 1333%.' 연일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는 증권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린 펀드의 화려한 성적표가 아니다. 올해 김치파동으로 배추 가격이 치솟는 과정에서 한 산지 배추 수집상이 '배추투자 사모펀드'를 조성,2개월 만에 거둔 대박 신화다. 전국 배추 농가를 돌며 20년째 산지 배추를 수집하고 있는 A씨(49).그는 지난 8월 말께 지인들과 1억5000만원의 자금을 모아 호남 및 영남지역 일대 농가에서 포기당 300원에 '밭떼기'로 배추를 사들였다. 2개월 뒤 출하 시점인 10월 중순께 중국산 김치파동 여파로 배추값이 4000원 가까이 치솟자 시장에 내다 팔아 20억원 가까운 거금을 손에 쥐었다. 김장용 배추를 파종 시점에 헐값에 한꺼번에 미리 사 가격이 오를 때 처분,수익을 남기는 '배추투자 사모펀드'가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 전국 배추 산지 수집상들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예상 밖의 배추값 폭등으로 8월 조성된 '배추펀드' 가운데 10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 펀드들이 속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펀드는 지난해 배추 가격 폭락으로 올 배추 재배 면적이 줄어든 반면 대형 할인점 등 수요는 작년과 비슷할 것이라는 자체 분석을 바탕으로 조성됐다. ◆'배추 펀드' 은밀히 성행=배추 펀드는 수십년간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산지 수집상이나 벤더들이 수집을 맡는다. 펀드에 돈을 맡기는 사람은 친지나 지인 등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발빠른 개인투자자들도 합류하는 추세다. 투자금액은 대개 1억원 안팎으로 8월 파종에 들어가 10월 하순부터 출하되는 영남·호남산 김장배추가 투자 대상이다. 13배가 넘는 대박을 터뜨린 A씨는 "출하 시기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며 "강원도 고랭지 배추가 바닥나고 호남·영남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배추가 나오기 전인 10월 중순부터 10여일간이 배추 시세가 가장 좋은 때"라고 귀띔했다. 10월 하순에 접어들면 고랭지 배추가 끝물이어서 물량이 부족한 시점인 데다 서둘러 김장에 나서는 가정이나 식당 수요까지 몰리면서 배추값이 급등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대박' 아니면 '쪽박'=배추 투자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두가 만족할 만한 수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베테랑 수집상일수록 개인(직접) 투자에 나서기를 꺼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해 3억~10억원을 굴리는 전문 수집상들은 대형 할인점이나 김치 제조업체,일부 외식업체와 계약을 맺고 물량을 확보한다. 가격변동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간혹 직접투자를 하더라도 그해 예상되는 수요와 공급은 물론 돌발 변수까지 꼼꼼히 체크하는 게 필수다. 투자금도 전체 운영자금의 10% 선을 넘기지 않는다. A씨의 경우도 전체 3억~4억원의 운영자금 가운데 직접 투자한 금액은 3000만원 가량이다. 산지 배추 수집상들 사이에서 배추 투자는 '주식'이라기보다 '옵션' 투자에 비유된다. 2~3개월의 단기 승부인 데다 자칫 수확 시기에 공급이 몰리면 가격이 폭락,본전도 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정욱 롯데마트 야채담당 바이어는 "한 해 재미를 보고 그 다음해 '풀 베팅'에 나섰다가 '쪽박'을 차는 수집상을 여러 명 봤다"며 "장기간 보관이 불가능한 배추의 특성상 시기를 잘못 맞추면 수확도 못하고 밭에서 썩어가는 배추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년간 쌓인 현장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가 없다면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고 덧붙였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