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90도 젊다'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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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십,아직은 젊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전시회 제목이다.
누구라도 넋을 잃을 다도해 풍광을 쪽빛 위주의 오방색 화면에 담아낸 그림으로 유명한 전혁림 화백의 신작전(12월 18일까지 이영미술관)에 붙여진 것.1916년생,그러니까 구순인 노(老)화가가 올해 그린 작품들로 마련한 자리다.
전시작 중엔 젊은 사람도 엄두를 내기 힘들어 하는 1000호짜리가 포함돼 있다.
뿐만 아니라 목기과반 320개에 일일이 다른 그림을 그려 넣어 완성한 대작 '새 만다라'와 커다란 접시를 화폭으로 쓴 도자기화 등 기운과 실험정신 넘치는 작품들은 화가의 진짜 나이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전 화백의 삶을 돌아보면 구순에 신작전을 갖는 게 이상할 것도 없다.
그는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수산학교를 나온 뒤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 곧바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통영의 자연과 전통 민화 벽화 자수에 담긴 한국미의 정신에 주목하며 순전히 독학으로 독특한 색감과 한국적 정서 가득한 세계를 구축했다.
광복후 제1회 '국전'에 입상하고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화력을 쌓았지만 고향을 떠나지 않고 시류에 휩쓸리지 않음으로써 내내 묻혀 있다가 80년대 중반 예순살이 넘어서야 중앙화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회고전을 열었고 2003년엔 미수기념전을 열었다.
앙드레 말로는 예술을 "인간이란 작은 존재가 만들어내는 영원한 힘"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인간에게 영원한 가치를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예술가의 힘은 살아있는 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주는 데 있다고 얘기했다.
평생 쉬지 않고 그렸고,지금도 그리지 않으면 잡념이 드는 게 싫어 하루 10시간 이상 작업한다는 전 화백의 신작전은 지치지 않는 열정과 꾸준한 노력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힘들어서,누군가 빨리 알아주지 않아서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은 사람에게 '90도 젊다'는 화가의 열정이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