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옛 국가안전기획부)의 도ㆍ감청이 1970년대 초반부터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주장이 법정에서 제기됐다. `안기부ㆍ국정원 도청' 사건으로 기소된 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은 28일 오 후 서울중앙지법에서 형사1단독 김상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두번째 공판에서 입사 초기인 1970년대 초부터 불법감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변호인 신문에서 `도청 책임을 통감한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후 "피고인은 1971년부터 국정원에서 근무했다. 직원들이 불법감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언제 알았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입사 초기부터 알았다. 1970년대 초부터 있었다"고 답했다. 그는 또 국정원장에게 보고된 통신첩보보고서의 배포 범위와 관련해 "제 기억으로는 분명히 배포선(배부처)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알파벳으로 A, B… 이런 식으로 적혀 있었다"고 말해 도ㆍ감청 보고서가 국정원 밖으로 유포됐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는 이어 "형식은 A4 절반 정도 크기의 용지에 `홍길동 사망'식으로 제목을 쓰고 까만 밑줄을 긋는다. 내용은 통화 내지 대화 내용을 들었다는 것이 명확히 나타난다. 시간은 분 단위까지 나온다"며 "국내 주요 정치ㆍ경제ㆍ언론인 대화로 보이는 것은 10건 중 많아야 3건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불법감청을 하지 말라'는 국정원장의 지시를 어긴 것이 아니냐는 검찰 신문에 처음에는 "원장으로서 어떤 철학을 갖고 얘기한 것일 수 있다. 죄송하다. 저로서는 정확한 답변을 하기가 곤란하다"고 말했다가 변호인이 "그렇게 넘어가면 안 된다"고 다그치자 "진실된 지시가 아니었다"고 입장을 바꿔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국정원에 30여년간 있으면서 `도청하지 말라, 월권하지 말라, 정치사찰하지 말라, 신분노출 하지 말라' 이 4가지 얘기는 항구 여일 들었던 것이다. 어느 원장도 이 얘기를 안 한 사람이 없지만 그 다음날도 어김없이 감청보고서는 위로 올라갔다"며 하지 말라는 말은 대외용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검찰이 "국정원 직원들은 조사에서 `이심전심'이라는 말을 많이 쓰던데 어떤 의미냐"고 묻자 "국정원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정보업무 특성상 정책.행정부서처럼 딱 떨어지게 지시하지 않는다. `도청'이라고 직접 얘기하지 않는다. 그건 도둑질하라는 것과 같다. `감청'이라고 한다. 이게 이심전심이다"고 말해 상부 묵인하에 도ㆍ감청이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을 암시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