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가를 굽어보는 초고층 빌딩 창가에서 콜걸이 중년 사내의 지시에 따라 음란한 누드쇼를 벌인다.


한낮에 시작된 쇼는 밤늦도록 이어진다. 콜걸은 흡사 애완용 개처럼 목줄을 감고 때로는 전희를 위해 매를 맞는다. 이 장면은 이후 남녀가 역할을 바꾼 채 재현된다.


일본 무라카미 류 감독의 영화 '도쿄 데카당스'는 사디즘과 마조히즘 등 변태적인 성이 범람하는 일본 사회의 타락상을 고발한다. 이 작품에서 금기의 성(性)을 소비하는 계층은 일본 사회를 이끄는 상류층 사람들이다. 그들의 행동반경은 고층 빌딩 사무실과 고급 호텔이다.


영화는 이 같은 구성으로 고도 물질문명 속에서 속물화되고 있는 인간의 타락상을 파헤치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성에 탐닉하는 이유는 심리적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변태적인 성에 빠져드는 모습은 마약복용 장면에 비유돼 '치명적인 중독'으로 규정된다.


콜걸 '아이'가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나선 절정부는 이 같은 주제를 집약하고 있다. 약기운으로 넘어지고 깨져 추한 몰골로 바뀐 그녀는 정작 연인이 나타났을 때 그의 뒷모습을 숨어서 볼 뿐이다. 아이는 변태적인 성의 유혹을 뿌리치고자 여러 차례 방을 뛰쳐 나가지만 결국 되돌아온다.


지난 1992년 무라카미 감독이 발표한 소설 '토파즈'가 원작인 이 작품은 이탈리아 타오르미나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해 소설가 류를 중요 영화감독 반열에 올려놓았다. 1976년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데뷔한 그는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코인로커 베이비즈''69''5분 후의 세계''교코' 등을 발표하며 일본 문단의 대표 작가로 떠올랐다.


그의 다섯 번째 영화인 이 작품은 2004년 4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따라 국내 수입추천 심의신청 1호로 무삭제 통과됐다. 그러나 등급심의에서 제한상영가로 판정나 실질적인 상영이 불가능해졌다.


수입사 백두대간측은 6차례 재심의를 거친 끝에 동성애 장면 등 6분가량을 잘라내고 최근 18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광화문 씨네큐브 개관 5주년 기념작으로 12월2일 개봉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