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7:32
수정2006.04.03 07:34
강만수 <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
오늘의 민주주의와 대의정치의 뿌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들고 있는 1215년 영국 대헌장(Magna Carta)의 내용을 오늘의 의미로 정리하면 의회가 정한 법률에 의해서만 국민의 재산과 신체에 대한 침해를 할 수 있고,그 침해 활동에 관해 의회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그 감시활동으로서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156조원의 2006년 예산을 심의하고 있다.
예산안과 함께 제출한 2005년~2009년 재정운용계획에 국가부채는 2009년 325조원인 GDP의 30%를 유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2006년 말 국가부채는 279조원으로 GDP의 32%이지만 1997년 외환위기 때 12% 수준이었던 것이 급격하게 증가한 점에서 우려가 된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사업을 보면 국방개혁 621조원,국가균형발전 115조원, 농어촌투융자 119조원, 행정도시건설 45조원(정부 직접지출은 8.5조원), 희망한국 21 사회복지지출 8조원, 호남고속철 15조원, 대북전력지원 11조원 등 줄잡아 900조원을 넘는다.
지난해 말 133조원이 적립된 국민연금은 현재 제도가 그대로 갈 때 2036년 수지적자가 되고 2047년에는 기금이 완전 고갈될 것이라 한다.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4대 사회보험과 공무원연금 등의 잠재적자와 빠른 고령화에 의한 사회복지지출의 증가수요까지 감안하면 이미 예견할 수 있는 장기 추가재정수요는 1000조원을 뛰어 넘으리라 추정된다.
2005년~2009년 재정운용계획의 조세세입은 5%에 근접하는 경제성장률을 근거로 연평균 8% 정도 증가할 것으로 추계한다.
경제성장률이 문민정부(93∼97) 평균 6.8%,국민의 정부(98∼02) 평균 4.3%, 참여정부(03∼05) 평균 3.8%로 하락한 추세를 감안하면 앞으로 3.5% 전후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이를 전제한다면 조세세입증가는 30% 정도 과대 계상한 것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1.16 출산율에 의한 경제의 역동성 저하를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세출수요의 증가에 대응한 세입의 확보는 난제일 것이다.
대의정치 초기에는 세금을 내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던 것이 지금 모두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해도 세금 내는 사람의 '비용'도 세금 쓰는 사람의 '수익'과 동등하게 고려돼야 한다.
포스코 같은 공장을 2개나 건설하고도 남을 돈을 들여 행정도시를 건설하는 중복투자는 국민경제 측면의 기회비용과 잔여시설을 합쳐 45조원의 두 배 정도 투자낭비가 추정된다.
중앙집권적인 행정구조,기업환경과 고용기회의 불평등,교육환경의 불평등을 그대로 두고 행정도시 건설로 과연 수도권집중과 지역간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을까.
국방개혁 621조원,쌀 개방에 따라 늘어나는 농촌지원,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사회복지비용은 어떻게 하고, 행정도시건설의 중복투자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지 다수 국민은 말이 없다.
행정도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건설비용을 다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
세금을 쓰는 다수의 표에 볼모가 잡힌 대의정치를 생각하면 행정도시 건설비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다른 지역 사람들의 의견을 직접 물어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민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IMF의 재정학자 피터 헬러는 장기재정정책에 관한 저서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서 "몇 십 년에 걸쳐 집행되는 신중치 못한 재정지출의 약속은 국가의 능력을 체감시켜, 필수적인 국가기능,경기대응 재정정책,예상하지 못한 도전에의 대응을 거의 수행치 못하게 할 일반적인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혁신적인 세출축소와 경제역동성 회복에 의한 세입기반의 확충 없이는 재정파탄을 넘어 차세대의 국가경영을 걱정해야 할 수준으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