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웰컴 투 동막골''쉬리''공동경비구역JSA'…. 우리나라 역대 흥행 10위권 안에 든 영화들이다. 특히 '태극기…'는 관객 1174만명을 동원해 흥행 1위를 기록,우리 영화사를 새롭게 쓰게 한 블록버스터이다. 이어 실미도가 1108만명(2위),웰컴 투 동막골이 625만명(4위),쉬리가 621만명(5위),공동경비구역JSA가 583만명(6위)의 관객을 각각 끌어모았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한국영화의 전성시대를 여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전쟁이나 군 관련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과 함께 전쟁이나 군이 최고의 흥행소재임을 다시한번 입증했다. 그만큼 영화제작자나 영화감독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군에 촬영 관련 협조를 구하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군도 한때 영화제작 지원에 적극 나섰다. 2002년 8월 당시 이준 국방장관은 가칭 민간영화제작지원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국방부 정책실장이 위원장을 맡았던 이 위원회는 민간업체의 영화제작을 돕기 위해 설립됐다. 당시 강제규 김기덕 감독과 배우 안성기씨 등은 군의 조치를 크게 환영했고 노후화로 못쓰게 된 군사장비 대여 등에도 크게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강제규필름이 '태극기…'를 제작할 당시 육군에 제작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내용이 많다'는 등이 이유였다. 강제규필름은 하는 수 없이 대당 3억원을 들여 탱크를 직접 만들어야 했다. 1000여점의 총기 대포 기관총 등도 제작했다. 얼마전 육군본부는 영화 '용서받지 못한자'를 만든 신인감독 윤종빈씨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검찰에 고소했다. 2004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윤 감독은 졸업작품으로 이 영화를 찍으면서 군의 지원을 얻기 위해 가짜 시나리오로 군을 속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윤 감독은 영화의 원안인 단편 시나리오를 군 담당자에게 보내 촬영허가를 구했지만 내용상 문제가 있다고 거절당했다. '꼭 찍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 문제부분을 삭제ㆍ수정한 후 허가를 얻었다고 했다. 윤 감독 스스로 "옳지 않은 방법을 썼다"며 "책임을 달게 받겠다"고 한 만큼 법정에서 잘잘못은 가려질 것이다. 물론 군 수뇌부 입장에서는 국민에게 좋은 면만 보여주고 싶었을 게다. 군의 주장처럼 군을 '비하하는' 영화를 찍는데 인력동원에 군 시설까지 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군 수뇌부는 그러나 윤 감독을 '용서하지 못할 자'로 법정에 세우는 게 과연 최선의 방법인지 한번 돌아봤으면 한다. 군의 유연성 부족이 전도유망한 한 젊은 감독을 '범죄자'로 내모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 때문만은 아니다. 군이 이번 사건을 국민과 좀더 가까이에서 호흡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이참에 군과 영화계가 한자리에 모여 영화제작지원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으면 한다. 이는 참여정부 들어 우리 군이 강력히 추진중인 국방개혁의 최종목표인 '열린국방'과도 부합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김수찬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