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성장통(痛) ‥ 김기협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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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 <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keykim@hitech.re.kr >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올해 전 세계 골프경기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으로 미셸 위의 프로 데뷔전 실격을 꼽았다.
'1000만달러 소녀골퍼'의 실격 처리는 단 '30cm' 때문에 빚어졌다.
경기위원회는 드롭 위치가 30~38cm 정도 더 앞으로 갔다며 실격 판정을 내렸다.
공을 잘못된 위치에 놓고 치는 오소((誤所)플레이 규정을 적용한 것이다.
그동안 천재소녀라는 소리를 들으며 세계 정상급 기량을 선보였던 미셸 위로서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그런데 당시 문제를 제기했던 뱀버거 기자의 제보 시기를 놓고 아쉬움을 표시하는 골프팬들이 많다.
캐디 출신인 그는 현장에서 규정 위반을 확신했음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다음 날에야 뒤늦게 이의를 제기했다.
만약 사전에만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졌더라도 실격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놓고 기자회견 당시 "규정 위반이 없었느냐"는 뱀버거 기자의 집요한 질문에 미셸 위가 "기하학까지 설명해야 하느냐"며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든 데 대한 보복이란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미셸 위가 이제 월드 베스트가 됐기 때문에 겪은 재난이라고 생각한다.
아마추어였을 때는 조금만 잘해도 "어린 소녀가 제법이다"라고 추켜주었던 사람들이 프로가 되고 나니까 약간의 실수조차 용납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의 눈초리는 그가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켰을 때나 형광유전자를 넣은 형질전환 복제돼지를 만들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배아줄기세포 분야에서 최첨단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만큼 이전과는 윤리적·기술적 잣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황 박사 본인도 "눈 덮인 들판에 첫 발자국을 남기는 심정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듯, 전 세계의 엄정한 시선이 그의 발길에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얀 눈밭에 처음 찍는 발자국인 만큼 그 자국이 선명한 것도 당연하다.
따라서 최근 빚어지고 있는 윤리논쟁을 '성장통'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다.
우리에게 최첨단 연구를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었더라면 이런 고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황 박사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큰 짐을 벗고 연구에 정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선진국의 기준은 비단 1인당 GNP 규모에만 있지 않다.
수준 높은 과학문화와 윤리의식을 갖출 때 비로소 선진국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황 교수 논쟁을 과학기술 강국으로 가기 위해 필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로 여기고,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