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영화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


'드디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작년 11월 촬영을 시작했을 때부터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이며 북한 출신 해적과 남한 장교의 대결이라는 한반도만이 갖고 있는 소재에 시선이 모아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배우 장동건(33)이 있다.


영화 '친구'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주연배우급으로는 한국 역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 배우로 우뚝 섰으며, 이제 그에겐 '연기파'라는 이분법적 수식어도 낯설지 않다.


천카이거 감독의 '무극' 촬영이 끝나자마자 '태풍' 촬영에 나서 "2004년과 2005년이 한 해인 것 같이 느껴진다"고 말할 정도로 바쁜 날을 보냈다. 촬영을 마쳤다고 끝난 게 아니다.


장동건은 12월15일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각국에서 동시 개봉할 '무극'과 같은 날 국내서 개봉하는 '태풍'의 프로모션 활동을 병행해야해 말 그대로 눈코뜰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짬짬이 CF 촬영까지. 해적 씬 역을 맡아 자신있게 '태풍'을 소개하는 장동건을 만났다.


◇점점 더 묵직해지는 배우


그가 '꽃미남'에서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는 평은 이제 구닥다리가 됐다.


'태극기…' 차기작으로 '태풍'을 선택했을 때 그의 행보는 더욱 굳어져갔다.


점점 더 묵직해지는 이미지. 그 부분에 대해 "솔직히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대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의 영화를 좋아해 그런 부류의 영화를 선택하는 개인적 취향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성격파 배우? 그런 이미지로 굳혀지는 건 좋다. 그러나 캐릭터가 고착화되는 건 경계하는 부분"이라고 구별지었다.


"고정된 캐릭터가 있다면 다른 스타일의 영화에서는 관객이 날 안 믿어줄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와 함께.


◇'태풍'의 비극적인 남자 씬


자신과 가족을 내몬 북한과 받아주지 않은 남한, 두 체제를 향해 동시에 테러를 가하려는 해적 씬.


"영화 '친구'를 촬영할 때 곽경택 감독님이 현대판 해적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시놉시스만 받고도 출연을 결정할 수 있었던 건 감독에 대한 믿음과 캐릭터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캐릭터다."


상상 속의 캐릭터라고 생각해서 촬영 초반만 해도 머릿속에 그리기 힘들었다.


"두번째 촬영을 하는 날 한 영화 관계자가 현장에 왔다. 탈북자를 만나 '태풍'에서 씬이 외교관을 암살하는 장면이 있다고 말했더니 '그 심정 이해한다'고 답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이 작품이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멋만 부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비록 비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진정성을 가져야 했다."


국내 최대 흥행작들을 살펴보면 남과 북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많다.


그렇기에 오히려 식상한 소재일 수 있다.


'태풍'이 전에 나온 영화와 차별화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태극기…'가 가족의 중요성을 담았다면, '태풍'은 넓은 의미로 남북한은 한 가족이라는 진정한 화해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남과 북을 소재로 한 영화는 통일이 되기 전까지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가깝게 느끼지 않을까."


씬은 불 같은 남자다.


이정재가 맡은 남한 해군 특수장교 강세종은 물 같은 남자. 그래서 씬은 시종 폭발하고 분출해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감정을 누르는 연기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독님이 물과 불 같은 대결 구도를 원했다. 영화는 혼자서 만드는 작업이 아니기에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감독의 의견에 따랐다."


그렇다면 '태극기…'에서 동생을 잃었다고 생각한 후반부의 모습과 비슷하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라며 크게 웃었다.


전작과 비슷할 수도 있는 역할인데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는 "지금까지 해온 것 중 아쉬운 부분들을 보충할 수 있고, 맡아왔던 캐릭터들을 총집합해 놓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 분이 오셔야 한다.


기대가 너무 크다. 현재 영화계 분위기는 '태풍'이 관객 1천만명을 넘어서 새로운 흥행 기록을 쓸 수 있겠느냐가 관심이다.


이런 기대는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아마도 150억원이라는 제작비, 흥행 기록을 세운 바 있는 감독, 남과 북을 소재로 한 묵직한 드라마, 그리고 인기 있는 배우들 때문에 총체적으로 그런 기대를 하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1천만명이 본다면 남한 전체 인구 5명 중 1명이 극장에 직접 와서 봐야 한다는 건데 그건 영화의 힘만이 아니라 어떤 다른 힘이 존재해야 하는 것 같다"는 장동건은 "이를테면 그 분이 오셔야 한다"며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그러면서 영화 '태풍'에 대해 "관객이 영화를 보러오는 이유가 각각 다를 것이다. 그 모든 것이 함축된 영화"라고 자신 있게 소개했다.


◇때로는 장애가 되는 한류 스타


장동건의 행보는 주목된다. 국내뿐 아니라 이미 그는 아시아 스타가 돼 있기 때문이다.


영화 '무극'을 통해 세계와 함께 하는 작업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내디딘 그는 오래 전부터 할리우드 진출을 마음 속에 담아왔다.


그러나 장동건은 "할리우드 진출이 목표나 꿈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한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은 곳"이라고 덧붙였다.


"할리우드는 좀더 넓은 관객을 향해 가는 것이다. 좋은 세팅, 좋은 시나리오가 있고 동양인을 바라보는 데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좋은 기회를 만날 때를 위해 나 자신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장동건은 대표적인 한류 스타다.


그에게 한류 스타로서의 고민을 물었다.


"이 같은 환경은 배우들이 스스로 의도하지 않았는데 생겨났고, 개인적으로도 혜택을 많이 입었다. 이 현상이 나타날 때 우리 배우나 가수들 모두 준비가 돼 있지 않았으며, 그래서 서툴렀다. 지금은 체계화됐다."


자, 여기까지는 일반론적 접근이다.


그런데 그는 난데없이 "한류 스타라는 위치가 장애가 될 때도 있다. 다만 이미 덩치가 커져버려 이를 받아들이고 마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했다.


장애라니? 더 큰 인기를 누리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데.


"배우로서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배우로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대표적인 게 배우가 아닌 저명 인사가 되어가는 느낌 같은 거다." 무슨 뜻인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면 '장애'를 피해가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궁금했다.


"항상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하면서 생겨나는 돈이나 인기를 좇지 않으려 한다. 배우로서 본질을 생각하고, 배우로서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다는 각오를 잃지 않으면 모든 것이 따라오니까."


헐거운 질문에 대한 심도 있는 답변을 통해 장동건은 톱스타이면서 자랑할 만한 배우라는 느낌이 단순한 느낌으로 그치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