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황우석 교수를 위한 변명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조동성 < 서울대 교수·경영학 >
1997년 외환위기가 우리 경제를 강타했을 때 일이다.
244억달러에 달하는 외화보유액을 갖고 있기 때문에 외환 부족은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우리 국민들은 이 돈이 대부분 해외 부동산 등 고정자산에 묶여 있어 외채를 갚는 데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우리 국민들은 기업을 불신하고 정부를 비난하는 대신,스스로 국가를 살려내겠다는 각오하에 자구노력을 시작했다.
해외언론이 찬탄해 마지않은 '금모으기 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1998년 1월5일 시작해 70일 만인 3월15일 끝날 때까지 가구 기준으로 전국의 23%에 해당하는 349만명이 참여해 225t,가격으로는 21억7000만달러에 달하는 금을 모으는 실적을 올렸다.
이같이 이해관계를 떠난 국민들의 자발적 행동에 대해 해외언론들은 한국민이야말로 자신보다 국가와 사회에 대해 더 헌신하는 국민이란 글을 다투어 실었다. 이 사건은 "세계인들은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키는 국민을 존경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최근 한국을 BT강국으로 올려놓은 황우석 교수가 연구원 2명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난자,그리고 미즈메디 병원에서 적정한 실비를 보상하고 얻은 난자를 모르고 사용한 것에 대해,또 이를 안 후에도 공여자의 사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비밀로 했다는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모든 직책에서 사임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서울대 수의대의 기관윤리심의위원회의에서 밝혔듯이 황 교수가 범한 실수는 불법도 아니고 한국적 정서에 위반된 것도 아니었다. 황 교수를 비판한 국내언론도 이를 인정하면서 다만 황 교수의 행위가 1964년 헬싱키선언에서 정립한 '윤리원칙'을 근간으로 한 세계표준에 위반됐다는 것을 문제로 삼고 있다. 그 언론에서는 황 교수가 알고 있는 것을 기자들에게 부인했다고 해서 정직성에 대해 추가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황 교수는 언론인이 정보제공자,성직자가 사도,의사가 환자,스승이 제자의 비밀을 지켜줘야 하는 의무와 자연과학자가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의무 속에서 의사와 스승 입장에서 전자를 택했던 것이지,진실을 숨김으로써 연구결과를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 문제는 황 교수의 실수가 아니라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황 교수가 이를 사전에 알면서 저질렀다면 비판받아야 하겠지만,이번 상황은 일이 저질러진 다음에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황 교수가 인간적인 관계를 보다 강조하는 한국의 정서에 압각해 자연과학자보다는 의사와 스승의 가치판단을 따른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세계표준,즉 글로벌 스탠더드란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의적인 경우가 많다.
세계표준은 이를 주도한 나라들의 정서와 상식을 따르게 돼 이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의 정서나 상식과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앞으로 BT분야에서 우리가 세계 종주국이 된다면 세계표준은 우리의 가치관과 정서,그리고 상식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이번 언론보도를 계기로 난자를 제공하겠다는 여성들이 줄을 잇고 있다.
여성들의 자발적인 난자 모으기 운동을 계기로 우리 국민 모두 황 교수와 대한민국의 BT연구진들에게 십시일반의 자세로 도움을 주자.언론인은 대언론 관계를 맡아 언론이 편향없이 정확하게 보도하도록 하고,법률가는 이들이 법적인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도록 도와주며,회계사는 이들이 사용하는 연구비가 법의 테두리 내에서 사용되도록 도와주자.그렇게 되면 황 교수는 본인이 전문가가 아닌 언론 법률 회계 등의 업무를 맡아서 고생하지 않고,본인의 전문성을 살려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연구에 매진하게 될 것이다.
세계인들은 이같이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키는 국민을 존경한다.
/한국경영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