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갈현1동사무소 문화센터에서는


매주 화요일 점심 때 탱고수업이 있다.


"팔을 조금 내밀고 손 끝은 예쁘게."


"쓰다듬을 때 손길은 섹시하게 해 주세요."


검은 무도복을 입은 강사가 주로 40,50대인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조금 쑥스러워 동작을 취하는 게 망설여질 찰나 강사의 한마디.


"자기 얼굴을 봐요. 모델같죠? 지금은 내가 모델이야.자,모델처럼 지그시 고개 숙여봐요!"


절도있고 경쾌한 몸놀림으로 정열적인 탱고의 동작 하나하나를 가르치는 강사.


내년이면 우리나라 나이로 예순이 되는 정금선씨다.



태어날 때부터 몸에 배어 있었던 듯한 탱고 동작은 불과 6년 전인 1999년부터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해외에서 영어강사 전문 프로그램인 TESOL을 두 번에 걸쳐 이수하고 지금도 외국에서 국제적 명성의 무용가가 오면 통역을 담당하는 영어실력.47살이던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연마한 것이다.


그러면 그전에는? 놀랍게도 평범한 주부였단다.


평범한 주부가 영어를 배우고 탱고를 익혀 동네 아낙네들에게 춤바람을 일으키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첫 아이가 대학에 갈 무렵 저는 제 인생을 되돌아봤어요.


결혼하고 20년 가까이 육아와 가사에만 전념하다 보니 어느새 너무 퇴보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가족과 제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아야 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영어공부.마침 고3이 된 큰딸과 대학입시공부를 시작해 딸아이와 같은 대학 영문과에 들어갔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큰딸은 졸업을 하고 스튜어디스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엄마는 계속 공부를 하기로 한다.


그렇게 시작된 배움의 길은 영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도 계속돼 지금은 영국IDTA댄스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이쯤되면 물질적으로 유복한 집안의 팔자 좋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대학에 진학한 첫해 등록금을 빼고는 모두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전공이 영어였던만큼 학생들 과외지도를 주로 했지요.


학교공부를 따라가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빴습니다."


그녀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53살이 되던 무렵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운동도 겸할 겸 취미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탱고의 매력에 빠져들어 헤어나올 수가 없더란다.


한국 댄스스포츠연맹 지도위원 과정에 등록하고 영국의 유명 댄스 스포츠학교에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얼마 전 정금선씨는 대학에 같이 들어갔던 큰딸이 손자를 낳아 새내기 할머니가 됐다.


하지만 딸을 대신해 손자를 돌보는 모습을 그에게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직도 시간이 너무 없어요.


최근에는 탱고에 제 전공인 영어교육을 접목시켜 춤과 영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습니다."


신체나이 만큼은 20대라는 정금선씨.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인터뷰가 끝날 때쯤 스트레칭 시범을 보였다.


우와! 다리는 양옆으로 완전히 찢고 앞으로 숙여 가슴을 바닥에 붙였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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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후대책? 돈 버는 몸이 있는데... ]


그는 별다른 노후대책을 마련해놓지 않고 있다.


흔한 연금보험도 넣어두지 않은 상태.하지만 자신이 있다.


지금까지 자신이 공부하고 연구한 것들이 노후대책이라는 것이다.


"저는 이미 부자라고 생각해요. 이 몸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어디서든지 돈을 벌 자신이 있는 거죠."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세상 어디에 내팽개쳐지더라도 살아갈 자신이 있단다.


"이 나이에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어디서든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무엇보다 배움의 끈을 놓지 않다 보니 자식들과 세대차이 느낄 일 없이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덤입니다."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당장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노후대책으로 자기계발이 가장 좋다고 정씨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