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적인 한국인은 교육을 받는데 인생의 3분의 1(20~25년)을 보낸다.


그리고 은퇴 이후의 생애가 20여년,나머지 30년 정도가 근로기간이다.


즉 소비와 저축의 창을 통해 본 한국인의 생애는 '30년 간 열심히 돈을 모아 20,30대에 진 빚을 갚고 여생을 보내는데 쓴다'로 요약할 수 있다.


연령대별 부(富)의 수준을 추적해보면 어느 시점까지는 계속 증가하다가 이후 감소하는 역(逆) U자형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소득 중에서 부를 쌓는데 이용되는 부분의 비율,즉 저축률도 같은 형태를 띨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 같은 인생행로를 '생애주기 가설'(Life-Cycle Hypothesis)이라고 한다.


이런 통찰이 실제 현실과 얼마나 잘 맞아떨어질까? 미국 가계의 저축률 그래프는 대체로 역 U자형으로 나타나 생애주기 가설을 뒷받침해준다.


일본과 대만의 경우는 좀 다르다.


저축률이 특정 연령대까지 계속 증가하는 것은 미국과 비슷하지만,그 이후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한 채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생애주기 가설에서 가장 많이 벗어나 있는 곳이 한국이다.


우리나라 가계의 가구주 연령대별 저축률은 20대 후반에 정점에 이른 뒤 떨어지기 시작해 45~49세에 바닥을 찍고 다시 증가한다.


즉 역 U자형이 아닌 N자형이다.


2005년 3분기 전 가구의 가구주 연령대별 저축률은 40~44세 18.3%, 45~49세 17.1%로 떨어지다 50~54세 20.9%,55~59세 21.2%로 상승한다.


이 같은 저축 행태는 최근 고령층의 소비 증가율이 줄어드는 현상과 연결된다.


올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가구주 연령대별 소비 증가율을 살펴보면 20대가 8.1%로 가장 높고 30대와 40대는 5%와 4.3%의 견실한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50대와 60대의 경우 1%와 1.1%에 그쳤다.


저축률(저축/소득×100)이 증가하면 소비성향(1-저축률)은 당연히 감소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비 증가율이 반드시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소득이 크게 증가한다면 저축률이 상승하는 가운데서도 소비증가율은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소비 증가율 둔화는 저축률 증가와 소득 감소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50대 이후 연령층에서 저축률이 증가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큰 원인은 고령화에 따른 노후불안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인구 고령화 속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편이다.


자연히 고령화에 대한 대응 준비도 늦고 부족한 실정이다.


이렇다 할 노후 안전망이 없는 가운데 국민연금마저 현재 지급률과 보험료율이 유지될 경우 2047년께 고갈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노후 불안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은퇴를 앞둔 50대 이상이 저축률을 높이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자구책이다.


황혼기의 저축률 증가 요인으로 자식들에 대한 배려를 빠뜨릴 수 없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30대 초반에서 5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자식들에게 아낌 없이 투자를 한다.


자녀교육비는 공식집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사교육비를 포함시킬 경우 전체 소비지출 항목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2004년 중 한달 평균 가구당 사교육비 지출은 44만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같은 해 도시근로자 가구의 교육비 지출과 합하면 전체 소비지출 금액의 24.9%에 이른다.


한국의 부모들은 또한 자녀에게 거의 무조건적으로 많은 유산을 넘겨주려는 경향이 강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03년 기준 평균 결혼비용 1억4000만원 가운데 신랑 및 신부측 부모가 부담하는 금액이 57%인 7800만원에 이른다.


이처럼 50,60대에 자식을 위해 그 동안 모은 재산의 상당 부분을 떼주니 자신들의 여생을 위해 더욱 바짝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평균 60세에 공식 은퇴를 한 뒤에도 놀고 먹는 것이 아니라 68세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돈 벌이를 계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노년기에 애써 모은 재산도 다 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죽기 직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한국 부모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노후불안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저축을 늘리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 전체의 입장에서는 득보다 실이다.


현재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에 이르는 한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1955~63년생)가 이제 막 50대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 활력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그대로 들어맞는다면 이들이 내핍생활을 지속할 경우 우리 경제는 만성적인 내수부진에 시달릴 수도 있다.


전체 인구 가운데서도 가장 구매력이 높은 편인 고령자들이 안심하고 돈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든든한 노후 안전망을 구축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윤상하 정책분석그룹 연구원 shyoon@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