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나코루루 원하시는 분? 경쟁이 치열하네요… 그러면 가위바위보로 결정합시다."


홍대 근처 한 커피숍에 모인 10여명의 남자들.시끌벅적한 목소리 사이로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건담들과 만화나 게임 캐릭터를 축소해 만든 인형들이 탁자 위에 가득하다.


"지금 뭐하냐고요? 서로 필요 없는 것을 교환하고 있어요.


근데 경쟁이 생기니까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 게 저희 동호회 관습이에요." 건프라모델 동호회 '달롱넷' 회원들이 '증정식'이라고 부르는 이 행사는 프라모델 동호회원들이 모일 때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2년 전 우연히 용산에서 프라모델 가게에들어갔는데,20년간 잊고 있었던 건담이 있더라고요.처음에는 몇천원짜리 작은 것부터 사모으기 시작해서 지금은 컬렉션이 꽤 커졌죠." (인터넷 아이디 '릭돔' 씨)


흔히 프라모델 마니아라면 '세상 일에 관심 없을 것 같고 직장도 변변치 않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이날 모임에 참가한 10여명의 '번개'(하루 이틀의 짧은 시간 내 연락해 갑자기 모인 자리) 회원 중 상당수는 어엿한 직장인이었다.


연령대도 생각보다 높아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이 주류를 이뤘다.


건프라모델은 프라모델 종류 중 건담류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동호회 회원들은 건담 외에도 수많은 캐릭터 인형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건프라모델 마니아에도 종류가 있다.


원하는 시리즈를 모으는 '컬렉터(수집가)'형 회원과 자신이 캐릭터 인형을 만드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자작(自作)'형 회원이다.


컬렉터들의 컬렉션 대상은 여러 가지이지만 흔히 '가차퐁'이라고 불리는 '뽑기'들이다.


원하는 것만 골라 뽑을 수 없으니 남는 것을 서로 교환하는 데서 '증정식'이라는 전통이 생겨난 것이다.


자작형 회원들의 즐거움은 따로 있다.


아무 것도 없는 하얀색 건담에 자기가 원하는 색깔을 칠하고 은박지를 붙이거나 갖가지 문양을 넣어 멋있게 완성시키는 일이다.


머피씨는 이 재미에 푹 빠져 무려 100만원대의 에어브러시 세트를 장만하기도 했다.


한 개의 건담 세트를 사서 각 부품들을 조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2~3시간이면 되지만 원하는 부분을 자기 취향에 맞춰 손보고 도색하다 보면 몇 달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잦단다.


한창 설명에 열을 올리던 머피씨가 갑자기 "그런데 요즘엔 중국 아줌마들에게 이길 수 없어 슬프다"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한 캐릭터 인형을 가리키며) 여기 이 장갑에 반짝이 들어간 것 좀 보세요.


나는 절대 못할 것 같은데,중국 아줌마들은 척척 해낸다니까요." 중국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인형의 도색이 워낙 잘 나오고 있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터넷에서 흔히 이들은 '오타쿠'라고 공격받곤 한다.


이 말이 현실성 없이 무언가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란 어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롱넷 회원 굿데이씨의 생각은 달랐다.


"오타쿠는 마니아의 일본식 표현일 뿐이에요.


마니아는 좋은 것이고 오타쿠는 나쁘다는 식의 편견은 잘못된 거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져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취미활동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