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에 상영된 '가면의 정사(Shattered)'는 "만일 당신이 자신의 얼굴과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누구인가?"하는 물음을 던진다. 영화 속 주디스는 자신을 폭행하는 남편을 정부(情夫)인 젭과 함께 살해한다. 돌아오는 도중 자동차 사고로 인해 정부가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얼굴이 몰라보게 일그러지자 남편의 얼굴을 정부에게 이식한다. 결국 주디스의 음모가 탄로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는 내용이다. 이에 비하면 1997년 상영된 '페이스 오프(Face Off)'는 훨씬 단순하다. 기억력은 그대로인 채 수술로 수사관과 테러범의 안면을 통째로 바꾼다.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니콜라스 케이지와 존 트래볼타가 열연한 이 영화는 쇼킹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정체성 시비와 함께 과연 '안면이식 수술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고난도의 수술로 여겨졌던 페이스 오프가 현실로 성큼 다가섰다는 소식이다. 프랑스 의료진이 뇌사상태의 환자에게서 코 턱 입 등의 피부와 지방,혈관을 떼어낸 뒤 이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수술은 환자 자신의 등이나 엉덩이의 피부를 이용하는 부분이식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아직 수술결과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수술의 부작용과 정체성 혼란에 따른 윤리문제 등을 제기하고 있다. 심리적인 혼란도 뒤따를 게 뻔하다. 환자가 회복됐을 때의 새 얼굴 모습을 상상하면 이러한 우려는 쉽게 짐작이 간다. 원래 자기 자신의 얼굴과 기증자의 얼굴이 섞인 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페이스 오프는 얼굴에 심한 화상이나 사고를 입고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아가는 환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낭보다. 한편에서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장애인들은 우리 연구진이 주도하고 있는 줄기세포의 성공을 더욱 기원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에서 설정되는 모든 상황은 현실에서 실현되곤 하는데,환자의 윤리와 심리문제 역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해야 할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