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법 위반 앞장서는 입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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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새해 예산안 처리가 올해도 어김없이 법정시한(12월2일)을 넘겼다.
벌써 3년째다.
지난 10년 동안 대통령 선거가 있은 두 해를 제외하곤 단 한번도 시한을 지킨 적이 없다.
법위반 사태가 매년 반복되다 보니 이젠 '연례행사'가 돼버린 느낌이다.
그래선지 여야 모두 법위반 사태에 대해 반성이나 자성하는 자세는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여야 당직자들이 잇달아 기자회견장을 찾아 "예산안 처리의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해 유감"이라는 짧은 논평을 내놓고 책임을 상대당에 전가하는 '네탓 공방'을 벌이는 게 이를 대변한다.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예산안 처리시한을 국가의 최상의 법인 헌법으로 명시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정쟁을 즐기는 정치권에 맡겨뒀다간 백년하청'이라는 선견지명이 담겨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한내 예산안 처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적어도 그 때까지 나라 살림살이 내역을 확정해줘야만 이를 토대로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차질없이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면 그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에서 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여야가 매년 위법을 되풀이하는 것은 예산안 처리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정치권에는 "예산안을 법정시한내 처리해도 그만,안해도 그만"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여기에는 예산안을 나라 살림살이가 아닌 정치흥정물 정도로 바라보는 정치권의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걸핏하면 예산안을 쟁점법안과 정치적 성과물에 연계시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치권의 이런 자세가 바뀌지 않는한 이 같은 위법사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게 자명하다.
하찮은 내부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장관과 고위 공무원들을 호통치기 일쑤인 국회의원들이 헌법 위반을 밥먹듯이 하는 행태에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법을 만들고 지키는데 솔선수범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앞장서 법을 어기면서 어떻게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재창 정치부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