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다산칼럼] 관용의 강물이 흐르려면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박효종 < 서울대 교수.정치학 >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마음먹고 화두를 던졌다. 획일주의를 걱정하고 관용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이다. 관용을 실천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관용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며 "사돈 남말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그 말 자체는 귀담아들을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 생각과 가치관이 비슷하다면 관용은 필요없다. 그런 세상은 "척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이심전심의 세상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는 사람들 간에 생각이 다르고 또 그 차이 때문에 부딪치는 양상이 과격해서 '다양성'을 넘어서 '모순성'을 띠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접하면,그 의견이 '틀리다'라고 말한다. 사실 여기서 '틀리다'는 '다르다'는 의미일 뿐인데, 우리는 그 '틀리다'를 '틀렸다'는 것으로 왜곡해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왜 '틀리다'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라고 단정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스스로 직면하는 문제를 선과 악의 문제,혹은 정의나 불의의 문제로 틀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먹은 세대는 젊은 세대를 '덜 익은 세대'로, 젊은 세대는 나이 먹은 세대를 '쉰세대'로 낙인찍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들은 같은 산마루에서 해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젊은 세대는 '뜨는 해'를,나이먹은 세대는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또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자를 없어져야 할 불의의 존재 정도로 생각하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보수가 없는 진보는 무의미하고, 진보가 없는 보수도 존재이유가 없을 정도로 양자는 상호의존적임을 알아야 한다. 사안들을 선악의 문제나 정의와 불의의 문제로 접근하면 해법은 화끈하지만 평화공존은 어렵다. 정의를 주장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불의와 타협할 수 있으며,선의 세력이 어떻게 악의 무리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있겠는가. 일찍이 황희 정승은 다투는 두 하녀의 말을 들어본 다음 각각 옳다는 판정을 했고 또 그 우유부단함을 비난하는 부인의 말도 옳다고 했다. 이쯤되면 복수의 정답이 있다고 주장할 법도 한데,우리는 왜 굳이 단수의 정답에만 목을 매는가. 아무래도 하나의 정답밖에 없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익숙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옳은 것은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밖에 없는 해보다는 수없이 많은 하늘의 별들과 비슷하다. 사형제도 존치의 의견도 옳고,폐지의 주장도 옳다. 왜 이런 모순적 판단이 가능한가. 나는 내 생각과 가치관을 확고한 신념으로 유지할 수 있겠지만,나와는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는 그런 지적 자원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관용에는 지성의 겸손이 필요하다. 자기자신의 무오류성을 강변하고 상대방의 오류성을 강조한다면,그것은 교만함이다. 겸손한 지성에 의한 관용이 가능하려면,너무 큰 소리로 정의를 외치지 말아야 한다. 정의를 외치는 사람은 항상 정의의 칼을 들고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목을 베려고 한다. 심지어 모기를 보고 정의의 칼을 빼기도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정의란 열정이라는 불꽃에 의해 점화되는 가연성 물질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같아지는 획일적인 '붕어빵의 사회'도 거부하지만,또 조그만 일에도 정의를 외치며 칼을 빼드는 독선적인 '공갈빵의 사회'도 싫다. 오직 모든 색깔을 받아들이는 관용적인 '무지개떡의 사회'를 원할 뿐이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관용의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려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이 없는 사람들한테 관용을 베풀라고 말하지 말고 솔선수범해서 관용의 전도사가 돼야 한다. 그래야 "너나 잘하세요"라는 핀잔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1. 1

      [토요칼럼] 월간남친과 청년 정책

      마음에 드는 남자를 골라서 만날 수 있다. 레지던트, 검사, 아이돌 스타 등 직업도 다양하다. 지난 6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월간남친’의 기본 설정이다. 월간남친은 드라마 속 ‘가상 연애 구독 서비스’의 이름이다. 구독료가 월 50만원으로 꽤 비싸지만 데이트 상대 선택지가 900명에 이른다. 최근 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에서 한국 1위, 글로벌 1위에 올랐다.부서 회의 시간에 어쩌다가 이 드라마 얘기가 나왔다. 50대 부장이 젊은이의 트렌드가 궁금했는지 드라마의 인기 요인이 뭐냐고 물었다. 30대 초반 사원의 답이 흥미로웠다. “가상 연애에선 상처를 안 받잖아요.” 드라마 속 가상 연인이 그렇게 말한단다. “나는 절대로 너에게 상처 안 줘.”이성 관계에서 받는 상처는 꽤 깊고 아프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상 연애라니. 어쩌다 우리 젊은이들이 감정적 상처가 두려워 가상 연애 스토리에 빠져들게 됐을까. 그 배경에 대해 생각하던 중 한 초등학교 교사가 전해 준 이야기가 떠올랐다.5년 전 근무하던 학교에서 한 아이가 축구 경기 도중 넘어져 크게 다쳤다고 한다. 아이 부모가 자기 아이를 넘어뜨린 아이를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하겠다고 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 교장이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축구 금지. 현재 근무 중인 학교는 운동회를 무승부로 끝낸다고 한다. 승패가 갈리면 진 편의 아이들이 패배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같은 이유로 졸업식에선 아무에게도 상을 안 주거나 모든 학생에게 상을 준다. 아이가 다치지 않고, 마음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하지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은 역설적으로 상처에

    2. 2

      [랜드마크 대 랜드마크] 프랭크 게리가 추구한 21세기 건축의 비전

      노아의 방주가 맞다. 프랑스 파리의 불로뉴 공원 한쪽에 자리한 루이비통 미술관을 처음 본 순간, 그것은 유리로 만든 거대한 배였다. 항구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배의 정면이었다. 낮은 숲으로 둘러싸인 공원에 곡면의 유리 외피로 둘러싸인 우뚝 솟은 건물은 우리를 세상의 일과 근심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이끌어주는 노아의 방주였다. 그것은 영혼을 씻으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하는 재탄생의 기지였다.이 건물을 의뢰한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원래 루이비통의 명품 철학보다는 영업력을 중시한다는 평을 받는다. 그가 이 건물을 프랭크 게리에게 의뢰했을 때 그의 주문은 “저를 위해 뮤지엄 건물을 지을 땅을 보러와 주세요”였다. 이 말 속에는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은 루이비통을 위해서라는 뜻은 아니었다.루이비통과 헤네시의 인수합병 과정을 통해 배척된 루이비통 일가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사각형의 가방과 LV의 로고로 대표되는 이미지는 이 건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프랭크 게리라는 건축가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건축형식인 자유로운 곡선과 비정형의 은유만이 비친다. 아르노 회장은 그것을 원했을 것이다. 새로운 기업의 이미지를 이끌어갈 새로운 건축, 그리고 항해할 배, 그것은 게리의 작품 성향과 맞았으며, 1억유로에서 8억유로로 공사비가 증액됨에도 불구하고 추진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독특한 디자인으로 대표되는 프랭크 게리는 캐나다에서의 어린 시절 할머니 집의 어항에 든 잉어와 장난을 치며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말다툼 끝에 아버지를 주먹으로 쳐 쓰러뜨려 아버지가 후유증을 앓자 따뜻한 미국 LA로 이사해 택배기사를 하

    3. 3

      [김영수의 디코드 차이나] 탈중국 넘어, 용중(用中)의 시대로

      중국 상하이를 찾는 한국인이 부쩍 늘었다. 1920년대 유럽풍 건축물이 즐비한 거리인 우캉루 등 주요 명소엔 트렌디한 차림새의 한국 젊은이가 자주 눈에 띈다. 여행객만이 아니다. ‘딥시크 쇼크’ 이후 중국 혁신 현장을 찾는 기업인과 정치인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중국에 아직 기회가 있는가?” 中 배제한 공급망 동맹은 한계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탈중국 행렬이 이어졌다. 컨트리 리스크(국가 위험)는 현실화했고, 중국 기업의 역습이 시작됐다. 현대자동차, 삼성 스마트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대륙을 호령하던 시절은 아득해졌다. 여기에 미·중 경쟁 격화는 디커플링(탈동조화) 추세에 기름을 부었다. 중국을 배제한 시장과 공급망 재편 등의 영향 속에서 모두가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중국에 밀리던 배터리 기업에도 기회가 왔다. 미국 자동차 빅3 기업과 수십조원대 합작 계약을 맺었다.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5년 전기차 판매가 급감하자 빅3는 배터리 합작부터 칼을 댔다. 포드는 한술 더 떠 중국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술을 라이선싱했다. 냉혹한 경제 논리 앞에 ‘탈 중국 공급망 동맹’은 한계를 드러냈다.결국 본질은 경쟁력이다. 모두가 중국과의 거리두기를 외칠 때, 새로운 협력 모델로 판을 바꾸는 기업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을 피하는 대신 냉정하게 역이용하는 ‘용중(用中)’의 지혜를 통해 시장·공급망·혁신, 세 축에서 조용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국내 기업 휠라(FILA)는 거대한 중국 시장을 재공략 중이다. 중국 스포츠 브랜드 안타(Anta)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사업 운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