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5일 오후 3시 현재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121.41엔까지 낮아졌다(엔·달러 환율 상승). 32개월 만의 최저치다. 지난 3일 끝난 서방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일본이 최근의 엔화 약세에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약세가 가속됐다. 다니가키 사다카즈 일본 재무상은 "엔화가 올 들어 달러화에 대해 15%나 떨어졌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뉴질랜드 최대 은행인 ANZ내셔널뱅크의 외환 담당 알렉스 신톤은 "일본 정부가 엔화가 최소한 달러당 125엔 정도로 떨어질 때까지는 일본 경제에 아무런 문제를 초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당분간 시장 개입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회의에서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도 엔화 약세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미즈호 은행의 가토 이치요시 부사장은 "스노 장관이 위안화 절상을 촉구하면서 엔화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며 "외환 딜러들은 스노 장관의 침묵과 일본 재무상의 발언을 의식해 엔화를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 재무성에서 재무관(차관급)으로 근무하던 1990년대 말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스터 엔'으로 불렸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게이오대학 교수가 "내년 초까지 엔화는 달러당 130엔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할 정도다.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일본 기업들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올해 엔·달러 환율을 평균 110엔 선으로 상정해 사업 계획을 세웠으나 최근 엔화 약세로 이익이 예상보다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 자동차의 경우 엔화 가치가 달러당 1엔씩 떨어질 경우 연간 250억엔가량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엔화 약세의 최대 수혜자는 도요타와 같은 자동차 회사들이다. 혼다자동차와 닛산자동차도 달러당 1엔 떨어질 때마다 각각 140억~150억엔의 이익 증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됐다. 해외시장 비중이 높은 종합상사들도 혜택을 본다. 미국 달러화로 표시되는 해외 법인 이익이 결산에서 엔화로 반영돼 환율 상승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엔화가 달러당 1엔씩 떨어질 경우 미쓰이물산은 65억엔,미쓰비시상사는 90억엔가량 이익이 늘어난다. 반면 원자재 수입이 많은 전력 및 제지 업종은 엔화 약세로 손해가 더 많다. 그러나 일본 경제 전체로는 플러스 효과가 훨씬 큰 것으로 분석됐다. 노무라증권은 엔화 가치가 달러당 1엔 떨어지면 주요 기업의 경상 이익이 0.52%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상장회사들은 2005회계연도(내년 3월 말까지)에도 사상 최고 이익 경신이 확실시된다. 엔화 가치가 약세를 보임에 따라 국내 외환시장에서는 원·엔 환율이 급락해 대일 수출업체를 중심으로 비상이 걸렸다. 이진우 농협 선물금융공학실장은 "최근의 엔화 약세 추이를 감안하면 조만간 원·엔 환율이 100엔당 850원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며 "외환당국은 수출과 경기 차원에서 원·달러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