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 <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keykim@kitech.re.kr > 중국 교통대학과의 업무협약을 위해 상하이를 방문했다. 1896년 문을 열어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교통대학은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배출한 학교로도 유명하다. 이름과는 달리 이공대,인문사회과학대,농과대 등이 개설돼 있는 종합대학이며 특히 이공대학은 중국의 'MIT'라 불릴만큼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최근 의대와 병원을 인수한 후 의료공학 및 바이오 테크놀로지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총장으로부터 교통대학의 다양한 국제화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 대학의 공격적인 국제화 전략에 내심 놀랐다. 전체 학생 3만명 중 외국인 학생이 4000명이나 된다고 하니 총장의 자랑이 과장만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미시건 대학과 공동으로 기계공학 대학원 설립에 합의했고,싱가포르에 MBA 과정을 설치했으며,삼성전자의 '디지털 TV연구소' 유치에도 성공했다고 한다. 교통대학 뿐 아니라 상하이시 전체의 국제화 정도를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은 최고 시속 430km의 자기부상열차 안에서였다. 푸둥지역 30km 구간을 8분 만에 주파하는 자기부상열차의 속도는 마치 상하이의 세계화 속도처럼 느껴져 긴장감마저 일었다. 상하이의 노른자위 땅이라는 이 지역이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1993년 중국의 골칫거리 빈민촌이었던 이 자리에 개발의 첫 삽을 뜬 지 불과 12년 만에 푸둥은 당당히 상하이의 자존심으로 떠올랐다. 중국은 푸둥뿐 아니라 양산 심천항,쑤저우 공업특구 등 자신들이 자랑하는 건설 프로젝트 대부분을 10년 만에 완성시켜 세계를 긴장시킨 바 있다. 국가적인 프로젝트 앞에서 만큼은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중국인의 만만디 정신도 생략되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에는 지도부의 강력한 리더십도 큰 몫을 했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물꼬를 튼 직후부터 오늘날의 제4세대에 이르기까지,지도부의 얼굴은 바뀌었어도 경제성장 정책 만큼은 일관성을 유지해 왔다. 상하이가 중국 최초로 서방 무역을 개방한 항구에서 최고의 경제도시로 탈바꿈한 원동력도 거기 있을 것이다. 성장의 속도는 힘이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열강의 압력에 의해 강제로 문을 열어야 했던 상하이가 역설적이게도 그로부터 발전의 동력을 얻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세계화의 흐름을 거역하기 어렵다. 상하이는 당당히 세계를 바라보고 있고,나는 상하이를 통해 새삼 우리의 국제화 현실을 본 듯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