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신도시 백궁·정자지구에 사는 중소기업 오너 K씨는 최근 거래 중인 신한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 "여유자금 100억원이 있는데,강남에 중소형 빌딩을 구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K씨가 빌딩구입을 의뢰한 지 2주 후.


그의 손에는 신한은행 개인자산 컨설팅팀이 작성한 투자리포트가 들려 있었다.


임대수익으로 연 8∼10%를 올릴 수 있는 빌딩의 사진과 예상 투자수익률 등이 기록돼 있는 리포트를 검토한 K씨는 압구정동의 5층짜리 빌딩을 구입하는 데 손쉽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PB가 '21세기 금융 연금술사'로 떠오르고 있다.


은행이 단순히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곳을 뛰어넘어 개인 자산관리,투자은행,부동산 중개업 등 투자와 관련된 전 영역을 커버하는 '투자 전당포'로 변신하는 데 PB가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은행뿐 아니라 보험 증권사 등 모든 금융회사들이 회사조직을 PB영업중심으로 재편하는 등 PB전성시대는 이제 '현재 진행형'이다.


# PB중심으로 영업조직 재편


조직과 영업전략을 PB위주로 다시 짜는 대표적인 곳은 역시 PB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은행들이다.


국민은행은 강정원 행장의 지시로 극소수 최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했던 종전의 유럽식 PB전략을 보다 대중적 성향의 미국식 PB전략으로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예금 예치액 3억원 이상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Gold&Wise' PB센터 출점을 잠정 중단하고 1억원 이상 고객을 상대하는 일선 지점 VIP센터의 역량을 확충할 계획이다.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은 최근 "모든 고객을 PB 고객화하자"고 선언하고 자산관리 전문가 500명을 키워 각 지점에 투입키로 했다.


우리은행은 황 행장의 이 같은 생각에 따라 최근 중구 명동에 은행,증권,보험,종금업무 등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복합금융 매장 '우리금융 프라자'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나은행은 김종열 행장 취임 이후 첫 실시한 조직 개편에서 WM본부 PB사업본부 등으로 구성된 애셋매니지먼트 그룹을 별도 조직으로 만들었다.


하나은행은 현재 외부 컨설팅회사에 용역을 의뢰해 영업 역량에 따라 일선 PB들의 등급을 매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은행뿐 아니라 증권과 보험회사들도 PB위주의 영업전략 수립에 나섰다.


삼성증권은 종전까지는 VIP 전문 점포에서만 실시했던 PB서비스를 최근 전 지점으로 확대했다.


이를 위해 소매금융 관련 전 조직을 PB중심으로 완전히 새롭게 재편했다.


영업점 직원들을 경력과 관리자산 사이즈에 따라 '주니어','시니어','프레스티지','마스터' 등 네 등급으로 분류한 게 대표적인 예다.


삼성증권이나 우리투자증권 자산관리센터 등은 증권회사 자산관리 부문의 취약점으로 지적되던 부동산 관련 컨설팅 업무를 강화하는 등 과감한 영역 파괴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증권회사를 찾아오더라도 부동산 매매가 가능하도록 체질을 바꾸고 있다.


# 중산층에도 확산되는 PB서비스


개인고객에 대한 종합 자산관리는 통상 예치금 규모가 3억∼10억원 정도 되는 최상류층 고객을 대상으로만 이뤄져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은행 농협중앙회 등 국책은행과 특수은행을 중심으로 5000만원 이상 예치자들을 타깃으로 한 보급형 PB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추세다.


기업은행의 경우 PB지점인 '윈 클래스(Win Class)'가 중소기업 오너들로부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지난 3·4분기 말 현재 전국 115개 기업은행 윈 클래스 지점에서 PB 고객들로부터 끌어들인 예금액(수익증권 판매분 포함)은 4조5000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말의 3조4000억원보다 24%가 증가한 것으로,기업은행의 소매금융 부문에서 PB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달한다.


점포 숫자도 급속도로 증가해 작년 말까지 78개였던 PB 지점은 지난 10월 말 현재 115곳으로 늘어났다.


기업은행은 내년에 50곳의 윈클래스 지점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


서울 및 수도권에 한정돼 있던 보험업계의 PB지점도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 12개은행 PB고객 예치금 114조


국내 12개 시중은행의 PB 고객은 70만7327명(금융감독원의 지난 7월 말 통계)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4%에 불과한 수준.하지만 이들의 예치금은 전체 예치금 580조여원의 19.6%인 114조여원에 달한다.


특히 PB의 비중이 높은 몇몇 회사들은 PB고객의 예금비율이 전체 예금액의 30%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금융회사들의 소매 금융이 이미 PB시스템을 중심으로 꾸려질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는 통계다.


은행별 PB고객 예금 비율은 △한국씨티은행 63.4% △HSBC 40.0% △우리은행 39.3% △국민은행 38.9% 순으로 높았다.


지방 농촌지역 공략에 주력하고 있는 농협중앙회마저도 전체 예금액에서 PB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13.1%를 기록,10%를 넘어섰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은행들은 고객상담을 담당하는 PB들의 숫자를 대폭 확충하는 추세다.


리딩 뱅크인 국민은행의 경우 PB센터와 일선 VIP센터 등에서 1020명의 직원들이 고객의 자산 관리를 맡고 있다.


은행별 PB 인원 수를 살펴보면 △우리은행 70명 △하나은행 160명 △씨티은행 239명 등이다.


기업은행과 농협중앙회는 사실상 예금 예치액의 하한선을 없앤 보급형 PB 점포를 잇따라 선보이면서 PB 영업직원의 숫자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01년 23명의 PB로 영업을 시작한 기업은행은 올해 'Win Class'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였으며 PB 숫자도 122명으로 늘렸다.


올해 처음으로 영업을 시작한 농협에는 70명의 PB가 근무 중이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