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일본이 일본인에게 배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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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휘창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일본인은 친구가 많은데 일본은 친구가 별로 없는 이유는 일본의 글로벌 전략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을 다녀 봤지만 평균적으로 볼 때 일본인들이 가장 친절한 것 같다.
길을 물어 보면 영어가 잘 안돼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르쳐 준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도 내려서 함께 걸어가면서 목적지를 확실히 보여 줄 수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기도 한다.
어떨 때는 일부러 어눌한 일본말로 물어보기도 했는데 친절하기는 마찬가지다.
필자는 현재 안식년을 맞아 일본 도쿄대학에 초빙교수로 와있다.
아파트를 구하는데 관련 서류도 복잡하고,일본어도 잘 안 통하니,학교직원이 도와주었다.
너무나도 친절하고 철저하게 도와준 덕분에 좋은 아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보통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 정도로 친절하다면 속마음이야 어떻든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일본에 와서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교수는 물론 학교직원들과도 친구가 됐다. 현재 묵고 있는 아파트 매니저와도 좋은 친구가 됐다. 그 사람은 마침 영어를 잘해 필자와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물론 많은 도움도 받았다.
외국인의 경우 일본에서 은행계좌를 열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저기 다니면서 서류를 챙겨주고 자기가 거래하는 은행에 함께 가 계좌를 열게 해주었다.
개인차원의 일본인은 이렇게 친절한데 국가차원의 일본은 매력이 없어 보인다. 일본의 진정한 친구 국가가 몇이나 되는가?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되려 했을 때 몇 개 국가나 일본을 지지했는가? 아시아 국가 중에는 아프가니스탄,부탄,몰디브 정도가 고작이었다.
일본의 글로벌 전략에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중요한 문제에 대해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
예를 들어 당연히 확실하게 사과해야 할 전쟁책임에 대해서 우왕좌왕한다. 일본 총리가 이에 대한 유감을 밝히고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거나,아니면 곧 이어서 한국의 종군 위안부는 강제가 아니었다거나,중국에서의 남경학살은 사실이 아니라는 등의 망언을 하는 전·현직 고위관리가 등장한다. 이러니 일본이 아무리 여러 번 사과를 해도 주변국가들이 믿지 않는 것이다.
둘째,돈으로 대충 해결하려 한다.
일본은 현재 유엔 예산의 20%를 내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국 중 미국을 뺀 나머지 4개국이 내는 돈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그런데도 일본을 지지하는 국가가 별로 없다.
일본은 실제로 지난 수십년간 세계 각국에 엄청난 금액의 경제원조를 해왔다.
특히 중국에는 매년 수억달러 이상의 경제원조를 해왔음에도 중국에서는 반일감정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돈만 가지고는 친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은 정말로 중요한 정책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의 친구관계만을 너무 강조한다.
현재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지만 주변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나쁘다.
한·중·일을 포함하는 아시아경제공동체 형성은 필연적인 것이며,여기서 일본의 역할은 특히 중요한데 일본은 이를 등한히 여기고 있다.
앞으로의 세계경제 질서는 미주경제공동체,유럽경제공동체,아시아경제공동체의 3축을 기본으로 한 글로벌화가 진행될 것이다.
미주와 유럽은 이미 틀을 갖추었는데 아시아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다.
공동체 형성에는 경제적 논리와 더불어 상호간 신뢰가 필요하다.
현재의 한·중·일 관계를 보면 이러한 공동체 형성이 요원하게 느껴진다.
경제적으로 가장 앞서 있으면서도 역사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일본이 먼저 매듭을 풀어야 한다.
일본인의 친절성을 보면 가능성이 많을 것 같은데 일본국가의 글로벌 전략을 보면 답답하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일본의 보통사람들로부터 친절성을 배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