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통합법이 내년 하반기 시행되면 신종 금융상품들이 대거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금융상품 관련 규제들이 대폭 풀리면서 금융회사들의 상품개발 경쟁이 치열해 지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증권회사 자산운용회사 등은 법에 구체적으로 열거돼 있는 금융상품만을 취급할 수 있게 돼 있다. 유가증권의 경우 국채 지방채 특수채 사채 주식 출자증권 수익증권 주가연계증권(ELS) 등이 관련법에 일일이 규정돼 있고,파생상품 역시 상품 구성의 핵심 요소인 기초자산이 유가증권 통화 일반상품 신용위험 등으로 한정돼 있다. 통합법은 이러한 '제한적 열거주의'를 벗어나 특정 제품을 제외한 모든 유가증권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포괄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판매 가능한 것만 지정하는 '포지티브'(positive)방식에서 일정 부분만 제한하고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negative)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유가증권을 활용한 독창적 구조의 신상품 개발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의 주식 채권 펀드 개념을 벗어나거나 교묘하게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상품도 잇따라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경직된 '상품 개념'이 경쟁력 발목 대형 증권사에서 상품개발팀을 맡고 있는 A팀장은 최근 독일계 투자은행으로부터 신상품 개발 제안을 받았다. 투자은행 관계자들이 들고온 제안서에는 헤지펀드에 연계된 채권의 상품구조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7년 만기인 이 상품은 75%를 안전한 채권에 투자하고 나머지 25%를 해외 헤지펀드에 투자,고수익을 노리는 구조로 짜여졌다. 채권 수익으로 만기가 되면 원금을 100% 보장하되 헤지펀드의 수익률이 오를 경우 추가수익이 가능한 상품이다. 미국과 홍콩 등지에서도 인기가 높아 판매액이 상당하다는 설명에 A팀장은 즉시 상품 검토에 들어갔다. 그러나 법무법인의 자문을 받아본 결과 '국내에서는 판매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에 실망하고 말았다. A팀장은 "주식은 아니고,원금이 보장되니 펀드로 볼 수도 없고,채권과 유사하지만 현행 법률로는 채권으로 인정받을 수도 없다는 해석이 내려져 사업계획을 포기했다"며 아쉬워했다. 법률적으로 채권이 되려면 고정금리를 주거나 변동금리의 경우 '리보'(LIBOR·런던은행간금리)처럼 공신력 있는 지표에 연동돼야 하는데 헤지펀드에 연계된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유가증권의 개념을 제한적인 열거주의로 묶어 둔 바람에 해외 투자자들이 고수익을 즐기고 있는 상품을 국내에서는 아예 팔 수도 없게 된 셈이다. 다른 증권사에서 상품개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B팀장은 "유가증권 개념이 협소하다보니 새로운 상품 개발을 위한 노력이나 아이디어 싸움이 치열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며 "규제가 신상품 개발 경쟁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독창적 상품으로 진검승부를 자산운용업법에도 걸림돌이 많다. 현실과 동 떨어진 규제로 상품 개발이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지적이다. 헤지(위험회피) 이외의 목적으로 선물에 10% 이상 투자하면 무조건 '파생상품펀드'로 분류하는 규정이 대표적이다. 국채선물의 경우 현물보다 유동성이 뛰어나고 거래단위도 훨씬 작아 채권형펀드에 20~30%씩 편입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경우 '파생상품'이란 이름이 붙게 돼 고객들이 리스크 부담을 느끼고 외면하기 일쑤다. 업계 관계자들은 "채권선물이든 현물이든 펀드자산 한도 내에서만 매수하면 위험이나 효과는 동일한데 선물매수만 규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유가증권에 대한 까다로운 제한은 증권사의 왜곡된 수익구조로도 연결된다. 총수익 중 위탁매매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부 대형 증권사의 경우 70%를 넘어선 상황이다. 독창적인 금융상품으로 증권사 간 진검승부가 펼쳐지기 어려운 것이다. 조성훈 한국증권연구원 연구위원은 "유가증권의 개념을 '경제적 실질(Economic substance)'에 입각해 재정립해야 한다"며 "여러 유형의 기초자산적 성격을 지닌 유가증권을 나열하고,이를 근거로 다양한 파생상품을 허용하는 포괄적 정의 방식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