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플라자] 노사관계 핵폭탄 복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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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모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1997년 3월 제정된 노조법은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을 원칙적으로 허용했으나 급작스런 허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2001년 12월까지 유예했다.
2001년 노사정위원회에서 복수노조허용 규정을 또다시 5년간 연기하기로 함에 따라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는 2007년 1월1일부터 비로소 허용된다.
13개월이 채 남지 않은 현재 복수노조하의 교섭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안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고 있으며,현장단위의 노사는 복수노조시대에 대비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다양한 계파가 존재하는 대공장 노조,사무직 하위직급 및 양대 노총의 접경지역 사업장들에서 우선적으로 복수노조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지며,비노조경영을 취해왔던 기업들에도 노조결성의 압박은 커지게 된다.
복수노조 허용은 전개방향에 따라서는 노사관계의 핵폭탄에 비유될 만큼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노동계의 입장을 보면 창구단일화를 법적으로 강제화하는 것은 위헌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본계 쪽에선 자율교섭은 노동조합간 서비스경쟁을 유발해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일노조가 경쟁에서 생존하게 된다는 시장논리를 편다.
사용자와 노동계 모두 자율교섭을 지지하는 보기 드문 형국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율교섭이 과연 노조에 도움이 될지 여부를 따져보도록 하자.우리보다 앞서 복수노조를 경험한 영국노총(TUC)은 사용자에 의한 분할통치(divide and rule)와 무노조경영을 막기 위한 전략으로 창구단일화를 사업장 단위 노조에 권하고 있다.
영국노총의 전략적 사고는 '자율교섭=강한 근로권 인정'을 등식화하는 우리나라 노동계의 이념적 태도와는 분명 대비된다.
자율교섭이 사용자에 의한 분할통치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은 자율교섭제를 택한 일본의 노사관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서 발생하는 부당노동행위 중 상당부분이 복수노조 간 조합차별로 나타난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노조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사용자가 선호하는 노조들만 살아남고 저항적인 강성 노조들은 몰락할 가능성도 있다.
사용자쪽의 오해는 난마처럼 얽힌 우리의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다.
복수의 노조가 생기면 건강한 서비스 경쟁을 하기 보다는 전투성·선명성 정쟁을 하고 조합원 숫자 확보를 위한 불공정 행위가 조장돼 노노갈등이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서 복수노조 허용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교섭창구 단일화에 실패할 경우 노사관계가 사분오열돼 교섭의 혼선과 난맥상,교섭비용의 증가라는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일찍이 복수노조를 경험했던 영국도 복수의 교섭창구가 확산됐던 1980년대에 파업확률은 증가하고 기업성과는 감소했다는 연구들도 보고된다.
설상가상으로 자율교섭시 힘이 강한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교섭단위별 순환파업으로 파업의 영향력을 배가시킬 수 있지만 중소기업 노조나 비정규직 노조는 사용자의 분할통치전략으로 무력화돼 노사관계는 분절화될 수 있다.
노사는 교섭창구 설계방안을 주장함에 있어서 예상가능한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최선의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조 스스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자율적인 창구단일화에 성공하는 경우 이를 부인할 논리는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노사관계 수준으로는 자율적인 창구단일화가 실패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실패할 경우 노사관계는 사분오열돼 보호하려던 근로3권이 도리어 약화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복수노조 허용이 노노갈등 혹은 노사갈등을 증폭시켜 한국경제의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곤란하다.
창구단일화 법리의 완결성에 대한 공방에 우선하여 개방화시대에 국민의 후생을 위한 실사구시적인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