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는 기술융합(컨버전스)에 대한 경쟁당국의 판단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여러 기능을 통합하는 것이 정보기술(IT) 업계의 대세이긴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이 소비자 이익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MS가 이번 공정위 제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다는 방침이어서 MS의 끼워팔기에 대한 위법성 여부는 법정에서 최종적으로 가려질 전망이다. ◆51개월간 이어진 전투 MS에 대한 공정위 심의는 국내 인터넷업체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촉발했다. MS가 국내에서 PC 운영체제(OS)인 윈도 시리즈를 판매하면서 메신저 프로그램을 끼워파는 것은 운영체제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행위라며 2001년 9월 공정위에 신고서를 제출한 것이 MS와 공정위 간 공방의 시발점이 됐다. 3년 뒤인 2004년 10월엔 동영상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리얼네트웍스도 공정위의 문을 두드렸다. 윈도에 '미디어 플레이어'라는 동영상 프로그램이 장착된 이후 관련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이유에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신고가 접수된 뒤 51개월간 공정위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기술융합'과 관련해 앞으로 제기될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데 '선례'가 될 수 있는 데다 향후 법정 공방에서 불필요한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MS에 충분한 변론기회를 줘야 했기 때문이다. 최근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리얼네트웍스가 잇달아 MS와 합의하고 공정위 신고를 취소했지만 심의과정은 계속 진행됐다. 그동안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13차례의 전원회의를 거쳤다. ◆기술융합도 경쟁 제한하면 위법 공정거래법이 부당한 결합판매로 금지하고 있는 '끼워팔기'는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주상품과 끼워파는 상품이 별개의 제품일 것 △끼워파는 상품이 주상품과 함께 구입되도록 강제적 성격이 있을 것 △결합판매로 경쟁이 제한될 것 등 4가지 요건에 해당돼야 한다. 공정위는 이번 MS사건이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밝혔다. MS가 OS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다른 회사의 메신저 등에 대한 소비자의 구매 유인이 없어져 관련 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된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여러 프로그램의 기능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은 자연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MS는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어서 소비자 이익을 침해하는 정도가 지나치게 큰 것으로 분석됐다"며 "유럽연합(EU)과 달리 경쟁제품을 동반 탑재하라는 조치를 내린 것도 소비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EU 경쟁당국은 작년 3월 MS의 미디어 플레이어 끼워팔기를 반독점으로 규정하고 벌금 4억9700만유로(약 6100억원)와 미디어 플레이어를 삭제한 윈도버전을 별도 출시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비자가 미디어 플레이어가 포함된 제품을 선호해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