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속으로] 홍진HJC, 명품헬멧으로 세계인 '머리'를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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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오토바이 헬멧 시장은 '제로섬(zero sum) 게임'의 장(場)이다.
누군가 더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 많이 팔면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덜 팔게 된다.
신수요 형성이 활발하지 않은 탓이다.
연간 900만~1000만개 정도다.
게다가 소비자 입맛도 까다로워 헬멧의 안전성은 물론 용도에 따른 기능상의 차이도 중요시된다.
비포장 도로의 경우 헬멧의 충격흡수력이 더 강화돼야 하는 식이다.
안전성과 기능,디자인과 가격 등 이 네 박자가 딱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소비자들의 손끝에 닿을 수 있다.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 1990년대 초반부터 10여년 동안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업체가 있다.
바로 한국의 중소기업 홍진HJC이다.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에 위치한 홍진HJC의 본사와 공장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세계에서 가장 큰 헬멧이 보인다.
정면에서 보면 가로 지름만 11.6m로 직원들의 휴식공간으로 쓰이는 헬멧 모형의 건축물이다.
해외 바이어들도 이곳을 찾으면 반드시 기념 촬영을 해 간다.
무엇이든 세계 최고가 아니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홍완기 회장(65)의 아이디어다.
공장 입구에 새겨진 '우리의 힘으로 세계 제일을'이라는 표어와도 조화를 이룬다.
◆가격은 '중고가',품질은 '최상급'
홍진HJC의 성공비결은 한 마디로 '가격 대비 고품질'에 있다.
1986~87년 이 회사가 처음 미국에 진출할 당시만 해도 현지 시장은 일본 아라이(ARAI)와 쇼에이(SHOEI)가 1,2위를 다투고 있었다.
홍진은 품질 면에서는 이들 일본 제품에 뒤지지 않으면서 가격만 좀 낮추는 전략을 구사했다.
또 경쟁사들이 고수익이 나는 품목만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데 반해 다양한 종류와 사이즈의 헬멧을 출시했다.
헬멧의 종류에는 머리 윗부분만 보호하는 하프사이즈(Half size),얼굴이 노출되는 오픈페이스(Open face),비포장 도로용 오프로드(Off road),가장 큰 시장을 차지하는 풀페이스(Full face) 등이 있는데 홍진은 이 네 가지를 모두 취급했다.
크기도 경쟁 업체들이 5종류(XS,S,M,L,XL)만 내놓은 데 비해 홍진은 3가지 사이즈(XXS,XXL,XXXL)를 추가해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혔다.
디자인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도자기에 무늬를 입히는 전사기법을 적용,헬멧용 전사지(데칼)를 개발해냈다.
6개월~1년 주기로 교체되는 외부 그래픽은 '멋'에 민감한 헬멧 소비자들의 시선을 잡는 데 성공했다.
한 모델을 생산하는 데 8(사이즈)×6(색상)×6(무늬)=288종류로 타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제품을 생산했던 것이다.
물론 안전성은 가장 필수적인 요소다.
이미 1980년대 초 미국 연방교통부가 주관하는 'DOT' 규격과 경기 도중 사망한 스넬이라는 선수의 이름을 딴 '스넬(Snell)' 품질보증 등을 독자 기술로 따냈다.
이들 규격은 주기적으로 갱신해야 하는데 얼마나 적기에 따내 신제품을 출시하느냐가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친다.
홍진HJC 본사에서 끊임없이 헬멧의 안전도를 실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생산성은 높이고 제품은 독특하게
2004년 196만여개를 수출하며 세계 헬멧시장의 22% 정도를 점유한 홍진은 생산성 향상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
무엇보다 8년 전 완공한 중국 베이징공장과 용인 본사 인근에 자리잡은 12명의 납품업체 소사장들이 원가절감의 원동력이다.
중국 공장에서는 지난해 약 60만개가 생산됐는데 한국보다 생산원가가 평균 10~20% 저렴하다.
홍진의 간부 출신 소사장들이 맡은 납품업체의 효율성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홍진은 생산성 향상을 발판으로 제품 고급화에도 나서고 있다.
그동안은 주로 중고가 틈새 시장을 공략해 일본 업체들과의 경쟁을 피해왔는데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고가 시장에 진출한 것.
이를 위해 항공기 날개 등에 사용되는 카본을 이용해 강도는 높고 무게는 가벼운 고가(개당 미화 400~500달러) 제품을 내놓았다.
이 제품의 무게는 일반 헬멧(1700~1800g)보다 훨씬 가벼운 1200g에 불과하다.
내장재도 통풍과 항균·탈취 효과가 있는 기능성 신섬유를 적용했다.
곰팡이를 방지하도록 바이오 세라믹 코팅도 했다.
지난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모터사이클 및 관련용품 전시회에서는 '윈드 라이트' 시제품이 큰 인기를 얻었다.
소형 모터를 헬멧에 부착해 오토바이가 시속 30km 이상으로 달리면 풍력에 의해 헬멧 뒤쪽에 불이 깜빡이는 제품이다.
안전과 패션을 고려한 아이디어 상품으로 해외 바이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홍진의 기발한 신제품들은 오래전부터 명성을 얻어왔다.
헬멧 통풍구 안에 열선을 장착해 헬멧 유리에 입김이 서리지 않도록 한 '스노 모빌',헬멧에 마이크와 스피커를 부착한 '채터 박스',흡연자들이 쉽게 턱 보호대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사이맥스' 등이 모두 국제 특허를 획득한 발명품들이다.
최근에는 유아 및 어린이들의 두형을 예쁘게 교정해 주는 '두형 교정모'와 검도용 안면보호구 등 신사업 아이템도 개척하고 있다.
◆유럽 등 신시장 공략과 유통 시스템 관리가 과제
홍진은 북미 시장을 석권한 데 이어 세계 시장의 40%를 차지하는 유럽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유럽시장에서는 현지 딜러가 아닌 직판체제를 택했다.
이를 위해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에 현지 법인과 물류창고를 설립했고 나라별로 세일즈 그룹을 두고 있다.
홍진은 또 오토바이를 타는 인구가 많은 베트남과 대만 등 동남아시아 국가 진출도 신중하게 검토 중이다.
이를 통해 고·중·저가 제품을 망라해 명실상부하게 세계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비전이다.
용인=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