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부러운 일본의 노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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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도쿄시내 한 호텔에서 내년도 일본의 노사협상 전망을 가늠해볼 수 있는 노사간 1차 만남이 있었다.
경영자측을 대표하는 오쿠다 히로시 일본게이단렌 회장과 렌고(노동조합연합)의 다카키 쓰요시 회장 등이 참석했다.
내년 임금협상에 앞선 상견례였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자못 친목모임 같았다.
양측은 우선 일본경제의 현상황에 대해 "경기가 호전중이며 고용 환경도 개선되고 있다"는 인식을 같이했다.
오쿠다 회장은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서 인력 부족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에 대해 다카키 회장은 "경영진 측이 경기 호전을 인식한 만큼 내년에는 전체 직원의 30%에 달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게이단렌은 오는 13일 내년도 협상을 앞둔 공식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지난주부터 수뇌부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주요 기업들이 사상 최고 이익을 거둬 내년에는 종업원들에게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며 사실상 '임금 인상' 방침을 밝혔다.
경영진 스스로가 15년 만에 임금 억제에서 임금 상승 쪽으로 협상 전략을 바꿨음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경영진의 협상 지침이 나오자 철강 조선 전기 등 각종 산별 노조들이 기본급 인상 요구 방침을 속속 밝혔다.
전기노조와 철강노조는 각각 5년,6년 만에 임금인상안을 내기로 했다.
사측이 앞장서고 노조측은 뒤따라 협상 전략을 공개한 셈이다.
이 정도라면 내년도 노사협상도 무분규로 타결될 게 뻔하다.
지난해 노조는 사측에서 '협상 카드'를 내놓기도 전에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미리 발표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형편에 맞는 양보와 이해를 주고받은 일본 노사는 버블경제가 붕괴된 1990년 이후 임금협상에 실패,파열음을 낸 적이 한번도 없다.
장기불황 속에서도 기업 경쟁력을 잃지 않았던 것은 현실을 직시한 '노사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 기업들이 경기회복 바람을 타고 부활의 노래를 부를 날도 멀지않은 것 같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