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한국은 놀라운 나라"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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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 2가 외환은행 본점 빌딩 15층.리처드 웨커 외환은행장 집무실 한쪽 벽은 전통 한옥 주택의 격자무늬 창으로 꾸며져 있다.
장식대 위의 고려청자와 어울리는 방은 은은한 동양미를 풍긴다.
외국인 행장의 한국적 토착경영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일까.
웨커 행장은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평사원 엔지니어로 입사한 뒤 잭 웰치 당시 GE그룹 회장의 신임을 받으며 10년 만에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GE그룹의 최고위 임원 30명으로 구성된 고위임원위원회(Corporate Executive Council)의 일원으로 '6시그마' 운동을 주도한 경력도 갖고 있다.
'GE맨' 답게 그는 혁신의 신봉자다.
지난 1월 은행장 취임 이후 1년간은 혁신과 파괴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임원실의 벽을 모두 유리로 바꾼 것에서 보듯 조직과 서열 간 장벽을 헐어냈다.
직원평가도 하향평가 외에 상향평가를 가미한 '360도 다면평가'로 바꿨다.
학력과 연령을 파괴한 '열린 채용'으로 우리나라 금융계 공채 관행에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혁신은 '한국풍'이다.
직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기 위해 소주는 물론 폭탄주도 사양하지 않는다.
폭탄주를 5잔까지 마시다 '죽다가 살아난'(그의 표현을 빌리면) 경험도 있다.
싱글이 즐비한 국내 은행장들 간 골프회동에 나타나 핸디캡 24의 실력을 뽐내며(?) 행사 분위기를 돋울 줄도 안다.
서울역과 청량리역 등지에서 노숙자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통해 '밥퍼 행장'이란 별칭도 얻었다.
직원 및 고객들과 직접 대화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매일 2시간씩 개인교습을 받는 등 한국어 배우기에도 열심이다.
그의 '토착적인 혁신문화'에 대한 의지는 괄목상대할 만한 실적으로 이어졌다.
외환은행은 올 3·4분기까지 1조1695억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순이익을 올렸다.
시장에선 올해 순이익이 작년(5221억원)의 3배에 달하는 1조5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매각을 앞둔 외환은행 사령탑으로 국내 금융계 이슈의 한가운데 서 있는 웨커 행장을 만나 지난 1년간의 소회와 향후 전략 등을 들어봤다.
-한국근무에 대한 소감은.
"굉장히 흥미롭다.한국사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역동적이다.주간과 야간,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직원들을 보면 같은 직장인으로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 자신도 '뭔가 한번 해보겠다'는 성취욕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나'보다 '우리'가 먼저인 풍토 속에서 일하는 것도 새롭다. 특히 퇴근 후 생맥주잔을 앞에 놓고 상사와 부하가 '형님'과 '동생'으로 다시 만나는 것은 서양에선 맛볼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다. 최근 들어 배운 폭탄주 주량이 점차 늘고 있어 직원들과 어울리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가족도 한국생활을 좋아하는지.
"아내와 아이들이 서울 생활을 더 좋아한다. 한국사람의 정(情)을 듬뿍 느끼며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한국 음식 가운데 불고기를 가장 잘한다. 아이들은 미국에 잠깐 들어갈 때도 한국 식료품점에 가서 김을 사먹을 정도로 한국음식에 푹 빠져 있다. 나도 한국 음식의 매운 맛을 좋아한다. 그러나 '홍탁'만은 예외다. 삭힌 홍어는 맛이 너무 강하다."
-한국의 기업문화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무엇보다 훌륭한 인재로 가득차 있다.참신한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
또 한국 기업들은 일단 무엇을 하려고 마음 먹으면 해내고야 마는 강한 근성이 있다.한국 기업문화의 강점이다.
특히 외환은행은 좋은 인재를 갖춘 은행으로 정평이 나 있다.그들에게 보다 나은 동기를 부여하는 게 내 임무다."
-단점을 든다면.
"개선될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경직된 고용시장을 들 수 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해 많은 한국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제한적으로 하고 비정규직 채용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 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미국의 노동시장 경직으로 인해 항공산업이 불황에 빠졌으며 최근엔 자동차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한국은 미국 등 다른 국가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반(反)기업 정서를 어떻게 보는가.
"모든 문화에는 정서적인 측면이 있게 마련이다.단지 지나친 정서주의는 그릇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한국 기업은 당당히 세계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우수한 기업문화가 없다면 세계 무대에서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 정서상 특정기업이 너무 거대해지거나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게 마련이다. 외국계 자본에 대한 일부 부정적 시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국내 시장에서 외국계 자본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데 따른 경계심이 일부 부정적인 견해로 표출되고 있는 것 같다.세계 어느 기업도 완벽하진 않다.GE도,삼성도 완벽한 기업은 아니다. 현재 위치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현명하게 파악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동북아 금융허브로서 한국의 경쟁력은.
"경쟁자인 중국에 비해 한국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건실한 은행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규제환경 역시 앞서 있다. 금융허브 건설은 몇 가지 전제조건을 필요로 한다.국경 없이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해야 하며 이익창출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금융사는 위험을 부담하며 이익창출 기회를 모색하게 마련이다. 자본이동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과 위험을 감수한 이익창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금융허브 건설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올해 경영성과에 대한 평가는.
"은행권이 '금융대전'이라 불릴 만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동안 외환은행은 지속 성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대부분의 역량을 할애했다. 공격적 영업보다는 신용카드 부문의 부실해소와 출자전환 기업의 워크아웃에 집중했다."
-내년 경영전략은.
"성장과 수익창출이 두 개의 핵심 키워드다. 공격적이면서도 치밀하게 시장을 공략해 나갈 생각이다. 특히 현재 은행권 수위를 달리고 있는 외환과 기업금융 부문에서는 다른 은행과의 격차를 더 벌리는 데 노력하겠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개인금융 부문에서는 시장의 틈새를 집중적으로 파고들 계획이다."
-대주주인 론스타의 지분 매각작업 진행상황은.
"대주주의 지분 매각을 위해 은행에서 진행하고 있는 작업은 없다. 통상 대주주가 지분을 팔려면 먼저 경영진에 계획을 알리고 은행의 실무협조를 받아 매각 절차를 밟아가는 것이 보편적인 순서다. 대주주측으로부터 지분매각 작업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말은 아직까지 전해들은 바 없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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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62년 미국 세인트 루이스 출생
△1984년 미국 미주리대 졸업
△1984년 미국 GE(제너럴 일렉트릭) 입사
△1990년 GE메디컬 시스템 부장
△1994년 GE항공기계서비스 부사장 겸 유럽지역 CFO
△1995년 GE캐피털 감사담당 부사장
△1998년 GE캐피털 카드부문 부사장 겸 CFO
△2002년 GE그룹 기업투자자 홍보 부사장
△2004년 한국외환은행 수석 부행장
△2005년 한국외환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