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시장 경쟁의 핵심은 '혁신'이다. 하던 것만 잘해서는 안 된다. 파괴적 혁신이론의 주창자인 하버드대 크리스텐슨 교수의 말처럼 언제 어디서 어떤 경쟁자가 튀어나와 우리 기업을 파괴하고 게임의 룰을 뒤집을지 모른다. 혁신할 것인가,파괴당할 것인가? 기업가와 비즈니스맨들은 속이 바짝 탈 수밖에 없다. '메디치 효과'(프란스 요한슨 지음,김종식 옮김,세종서적)는 이처럼 혁신에 목숨을 거는 현대의 기업가와 비즈니스맨에게 신선한 돌파구를 제시하는 책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대한민국의 모든 빌딩에서 에어컨을 없애고 한 여름 전기 소모량을 지금의 10분의 1로 줄일 수 있을까? 무슨 백일몽 같은 소리냐고?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있는 이스트게이트 빌딩에는 에어컨이 없다. 한 여름 대낮에도 이 건물 안의 온도는 정확히 24도다. 건물주는 10년 동안 42억원의 전기료를 아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할 수 있을까? 환경주의 건축가 믹 피어스와 아프리카 흰개미를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만났기 때문이다. 건축가도 생물학자도 풀 수 없던 '에어컨 없는 빌딩'의 수수께끼는 둘의 만남을 통해 풀렸다. "흰개미 집의 통풍 원리를 인간의 빌딩에 구현해봅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생물학자와 건축가가 공통의 접점을 찾고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두 사람은 흰개미와 고층빌딩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아이디어가 폭발하고 에어컨 없는 빌딩과 42억원의 절전효과까지 덤으로 얻어진다. 그렇다. '메디치 효과'의 화두는 바로 이질적인 역량과 지식의 '교차점'에서 창조의 돌파구가 열린다는 것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미 알아챘겠지만 메디치 효과라는 이름은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메디치 가문에서 따온 것이다. 상인,군인,예술가,과학자,정치가, 종교인 등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 세계사에 유례가 드문 창조와 혁신의 빅뱅,르네상스를 주도한 그 메디치 가문이다. 사실 저자의 주장은 '기업이여,메디치 가문을 벤치마킹하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도 있다. 메디치 가문이 처한 환경과 현대 기업이 처한 조건이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당시 메디치 가문이 지배했던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말할 수 없이 혹독한 경쟁 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이유로 현대의 기업 조직이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메디치 가문은 자신들의 기업인 피렌체를 세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동서고금의 모든 지혜와 역량을 한데 모으고 토론하면서 마침내 르네상스라는 문명사적인 창조의 혁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나의 눈에는 '메디치 효과'가 세상 그 누구도 아닌 우리 대한민국의 기업인,대한민국의 비즈니스맨들을 위해 쓰인 책처럼 느껴진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작은 도시 국가,생존을 건 경쟁….게다가 지금의 한국사회는 보수와 진보,전통과 현대,IT와 굴뚝산업,서양과 동양,미국식 경영과 유럽식 경영 등 온갖 조류가 뒤엉켜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 같은 형국이다. '메디치 효과'는 바로 이처럼 엉키고 뒤섞인 한국 사회에서 세계를 경악케 할 혁신의 가능성이 태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려움을 이기고 서로 다른 관점과 이질적 역량들을 결집시켜라.그리고 '교차점'을 찾아 혁신의 돌파구를 열어라! 264쪽,1만4000원. 이재욱 딜로이트컨설팅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