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주가 빠지면 어쩌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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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런 호재를 내버려둘리 없다 싶었다.
주식시장 얘기다.
주가가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자 정부 관계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경제 치적을 포장하느라 여념이 없다.
물론 포장지는 주가다.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요즘 주가 예찬에 재미를 붙였다.
최근 조선대 특강에서 그는 "노무현 정권 비토 세력은 무역규모가 5000억달러가 되든,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든,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참여정부 때문에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논리를 폈다.
경제가 잘 굴러가는데 왜들 시끄럽게 구느냐는 얘기다.
지난달 청와대 직원들의 학습 모임이라는 '상춘포럼' 특강에서는 한 발 더 나갔다.
"주가지수가 1300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그 이상 무슨 상징적인 지표가 있느냐"며 "한국은 지금 선진국이 아니라는 증거를 댈 수 없기 때문에 선진국"이라는 궤변까지 늘어놓았다.
정부 홍보를 책임지고 있는 국정홍보처의 이백만 차장도 거들고 나섰다.
그는 인터넷 칼럼에서 경제상황이 좋다며 시장경제의 핵심지표인 주가가 사상 최고인데도 경제기자들이 괜한 비관론으로 위기를 조장한다고 타박했다.
자신이 기자 시절 경제위기론을 누구보다 많이 쓴 것을 후회한다는 자책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이 두 사람이야 직업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정통 경제관료라는 한덕수 경제부총리마저 정책 홍보에 주가를 들먹이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지난 8일 금융허브 국제세미나에서였다.
그는 정부가 금융허브 정책의 세부과제를 충실히 이행했더니 금융시장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고 했다.
주식시장 시가총액과 채권발행 잔액,외환 일일거래액 등 자본시장의 폭과 깊이를 나타내는 지표들이 2003년 말과 비교했을 때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는 자랑이다.
한 부총리가 거론한 지표는 다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어디 정부정책 덕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주식시장 시가총액부터 보자.주가는 저금리에 따른 과잉유동성과 적립식 펀드 등 '돈의 힘'에 의해 올라간 측면이 크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도 "과잉 유동성에 주로 의존하는 증시 활황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점이 있다"고 지적하질 않던가.
채권발행 잔액과 외환 일일거래액도 그렇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려고 국채 발행을 늘렸으니 채권발행 잔액이 늘어난 것이고 기업들의 노력으로 수출이 폭증하고 있으니 외환 일일거래액이 급증한 것이다.
국내 시장에서 버티다 못한 기업들이 활로를 해외에서 찾은 결과인데 정부가 왜 끼어들려고 하는지.
정부는 오히려 정책이 먹혀들어야 할 기업 투자와 실업률,양극화 등의 문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증시 활황에 취해 있을게 아니라 나라경제의 10년 뒤를 걱정해야 하는게 정부의 역할이란 말이다.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이런 얘기를 했다.
"1992년 대선 이후 다우지수가 크게 오르자,백악관 정치인들은 대통령이 증시 활황의 공로를 차지할 것을 원했다. 그러나 나는 반대했다. 증시는 모든 종류의 이유로 등락할 수 있고 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 나는 대통령이 주가 상승의 공을 차지하면 주가 하락의 비난도 받아야 한다며 보좌진을 말렸다. 칼로 흥하면 칼로 망하는 법이다."
김정호 경제부장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