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아이템 현금거래 시장이 연간 1조원대로 커졌는 데도 이를 통제할 수단은 전혀 없다.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거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정부는 팔짱 끼고 바라만 보고 있다. '사적 자치' 원칙을 내세워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다. 게임 서비스 운영상의 문제인 만큼 업체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얘기다. 문화관광부 산하 영상물등급위원회도 아무런 규제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영등위 관계자는 "아이템 거래를 규제하는 규정이나 근거가 없기 때문에 영등위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행심 조장 게임에는 등급을 내주지 않는 사행성 관련 조항을 근거로 게임업체에 '약관에 금지 규정을 두라'고 권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게임 업체들은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영등위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약관에 거래 금지 조항을 명시해놓고 아이템 거래를 반대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나 속셈은 다르다. 게임을 뜨게 하려면 아이템 거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2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템 거래는 필수불가결하다"며 "온라인게임에서 아이템 거래를 부정하는 것은 게임 문외한들이나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자사의 게임 약관에는 거래를 금지해놓고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얘기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아이템 거래를 금지하고도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이 많다. 미국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가 대표적이다. 이 게임에서는 아이템을 구입하거나 획득한 후엔 팔거나 양도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거래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 써니YNK는 엔씨소프트보다 한 술 더 뜬다. 아이템 거래를 대놓고 지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아이템 거래 중개 업체인 아이템베이와 제휴,아이템 해킹과 사기를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안전한 장치를 마련할 테니 안심하고 거래하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시리즈나 써니YNK의 '로한'이 아이템 거래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대표적인 게임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전략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윤영석 써니YNK 사장의 경우 전에는 "아이템 거래 때문에 한국 게임산업이 망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로한'을 내놓은 후엔 아이템 거래 양성화의 전도사로 변했다. 최근에는 아이템 거래를 양성화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정성호 열린우리당 의원은 아이템 거래를 일정 부분 허용하자며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한국게임산업협회와 청소년위원회,인터넷PC문화협회,학부모정보감시단 등 시민단체들은 양성화될 경우 온라인게임이 '범죄 소굴'이 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학부모정보감시단 김민선 사무국장은 "아이템 거래를 양성화하면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거나 아이템을 갈취하는 사례가 급증해 청소년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 관계자는 "아이템 거래를 양성화하면 새로운 문제가 생길 것 같고 전면 금지하고 대대적으로 단속하면 게임산업이 위축될 수 있어 고민"이라며 "게임산업이 아이템에 종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