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대지 66평,건평 79평의 2층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김성환씨(53). 김씨는 당초 내년 하반기께 지은 지 20년이 지난 이 집을 헐고 4층짜리 다세대 주택을 새로 건축할 생각이었지만 일정을 대폭 앞당겨 지난달 부랴부랴 건축허가 신청을 냈다. 내년부터는 다세대주택도 아파트처럼 일조권을 확보하기 위해 신축시 인접 대지 경계선과 건축물과의 거리를 대폭 늘리도록 의무화되기 때문이다.


연말을 앞두고 김씨처럼 살고 있는 집을 헐고 다세대주택을 새로 지으려고 계획하고 있던 단독주택 소유자의 건축허가 신청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다세대주택의 일조권을 강화한 건축법 시행령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다.


지난 7월 개정돼 내년 1월부터 시행 예정인 건축법 시행령 86조에 따르면 일조권 개선을 위해 내년부터 새로 건축허가를 받는 아파트는 채광창이 있는 벽면을 인접대지 경계선으로부터 건물 높이의 2분의 1 이상 띄어 지어야 한다. 다세대주택은 인접 대지와 건물 높이의 4분의 1 이상 거리를 두도록 돼있다.


아파트는 이미 적용을 받아왔으나,내년부터 인접 대지와의 거리 기준이 종전(4분의 1)보다 두 배 늘어나게 됐다.


특히 그동안 인접대지와의 이격 기준이 없었던 다세대 주택은 내년부터 시행령 개정에 따라 처음으로 규제를 받게 돼 신축이 상당히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시행령에서 정한 제한규정이 너무 강해 낡은 단독주택을 헐고 그 자리에 다세대주택을 지으려고 마음먹고 있던 집주인 입장에서는 필요한 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사실상 건축 계획을 포기해야 할 형편이다.


예컨대 단독주택 자리에 1층 주차장을 포함해 5층 규모(높이 13m)의 다세대주택을 지을 경우 현재는 통상 인접대지와 50~70c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지만 개정된 시행령이 적용되면 건물 높이의 4분의 1인 3.25m를 띄어야 한다.


대부분의 노후 단독주택이 대지 면적이 작고 이웃집과의 거리가 가깝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인접 대지와 3m 이상을 띄우고 4층(주차장 포함시 5층) 높이의 다세대 주택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건축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연수 오리엔탈종합건설 이사는 "현재 2종 주거지역에서 노후 단독주택을 헐고 다세대주택을 짓는 경우 용적률 200%를 겨우 맞출 정도로 사정이 빠듯하다"며 "강화된 시행령에 따라 다세대주택을 지으려면 집주인은 건축비도 못 뽑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에 따라 건설 현장에선 이미 '내년부터 다세대주택 신축은 끝났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법시행으로 집 한 채 가진 서민들이 재산상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하지 않을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