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종사노조 파업이 11일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으로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나흘간의 파업으로 '하늘 길'이 마비돼 국민과 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또 노·노(勞勞) 간 갈등이 불거진 데다 노사가 자율이 아닌 타율로 사태를 '봉합'함에 따라 파업 후유증이 우려된다. 대한항공은 이날 화물기 운항을 12일부터 완전 정상화하고 13일부터 국내·국제선 전 노선을 정상 운항한다고 밝혔다. ◆파업 피해 2000여억원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파업은 이번이 네 번째였다. 조종사노조가 2000년 5월과 10월,2001년 6월 파업을 벌일 때마다 회사측은 노조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이번 파업부터는 사측의 입장이 달라졌다. 파업 첫날부터 건설교통부에서 긴급조정 발동 필요성을 제기한 데다 일반직 노조와의 형평성 문제를 인식,'이번마저 밀리면 조종사노조의 파업 재발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측은 노사협상장에서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안인 기본급 2.5% 인상안을 시종일관 고수하며 노조에 '선(先) 파업 철회 후(後) 협상'을 주장했다. 노조는 긴급조정권 발동으로 노조안인 4.5% 임금인상을 관철시키지 못했지만 '자신감을 얻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박병렬 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자율 타결의 기회를 잃었지만 조합원 1340명 가운데 1050명이 파업에 참여한 점은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흘간의 파업으로 대한항공은 670여억원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수출업계(1321억원)와 여행업계(72억원) 등의 피해까지 합할 경우 피해액은 2063억원으로 추정된다. 조종사 노조는 '연봉 1억원이 넘는 귀족 노조들이 파업을 한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노·노(勞勞) 갈등 터져 파업 과정에서 불거진 '노·노 갈등'은 대한항공이 앞으로 치유해야 할 과제다. 조종사들은 올해 성과급 300%와 안전장려금 50%를 받았다. 그러나 대한항공 일반직 노조 1만여명은 조종사 파업으로 경영손실이 발생해 내년 초 받을 예정인 성과급(최대 150%)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승객들의 항의를 고스란히 받은 것도 승무원과 탑승 안내를 맡은 일반직원들이었다. 지난 10일 최종 노사 협상 과정에서 사측 교섭 대표였던 김태원 노사협력팀장은 "공항에서 남녀 직원이 뺨을 맞고 폭행당하고 있다"며 노조측에 큰소리로 항의하기도 했다. 일반노조는 조종사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파업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회사측은 조종사들이 복귀하면 일반직원과 화합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지만 파업 사태로 감정의 골이 깊어져 '노·노 갈등'을 해소하는 데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업으로 조종사노조도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조종사를 제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아나 조종사노조 역시 파업 이후 노조원 108명이 탈퇴하는 등 내홍을 겪었다.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해야" 항공업계는 정부가 지난 8월 아시아나 조종사노조 파업에 이어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파업에도 '극약 처방'인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파업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아시아나에 비해 5~6배가 넘는 등 파업을 그냥 둘 경우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 정부로서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며 긴급조정 발동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올해 있었던 두 번의 긴급조정권 발동으로 앞으로 조종사노조는 파업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항공업계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항공산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특별법인 철도노동법(Railway Labor Act)으로 항공산업 노사 분규에 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개입하고 있고,일본은 노동관계조정법에 철도와 항공을 공익사업으로 지정해 규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