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 순천향대 교수·경제학 > 최근에 작고한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넥스트 소사이어티'에서 "앞으로의 사회와 기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주요 요소는 전쟁,괴질,또는 혜성과의 충돌 등과 같은 돌발 사태를 제외하면,그것은 인구구조의 변화와 지식의 중요성이 증대하는 것"이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인구비율은 2000년에 7%를 넘어섰고 2018년에 14%를 돌파하며,2050년께에는 37.3%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인구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 1988년에 도입된 국민연금은 가입자 수 1700만명,수급자 수 170만명,적립기금 154조원의 초대형 기금으로 커져가고 있다. 장기적으로도 연금수급자 1000만명,적립기금 1700조원까지 증가돼 복지제도와 금융시장의 중심축이 된다. 최근 증권시장이 불황에도 불구하고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다년간의 무역수지 흑자에도 기인하지만 국민연금 기금 등 연기금이 받쳐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긍정적 효과는 2020년 중반이면 부정적 효과로 전환된다. 7080세대가 본격적으로 연금수급세대로 전환되면서 쌓였던 적립기금이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국민연금기금이 2020년대 중반 이후 감소추세에 들어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연금수급자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현행 국민연금의 수급부담구조가 가입자가 불입한 보험료의 원리 합계액보다 연금수급액이 두 배 정도 많게 설계돼 있는 '저부담ㆍ고급여'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재정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두고 있으나 3년째 공전 중이다. 국민연금 재정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 생활이 어려운 국민들이 미래를 위해 '더 내고 덜 받는' 개정안을 수용할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관련돼 있다. 이러한 불신은 정부안대로 법이 개정된다 하더라도 재정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정부안대로 하면 연금고갈시점을 20여년 늦추는 효과가 있을 뿐 재정불균형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은 연금급여수준도 국민연금보다 훨씬 높게 설계돼 이미 적립기금이 고갈됐거나 고갈돼 가고 있다. 그런데도 급여수준도 낮고 기금고갈 시점도 30여년 남은 국민연금을 먼저 개혁한다고 하니 일반 국민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한편, 정부가 지난 1990년대에 기금관리기본법, 공공자금관리기금법(공자법) 등을 만들어 국민연금을 저금리로 강제 예탁시켜 기대수익을 저하시킨 것도 그 크기의 대소와 관계없이 국민 불신을 증폭시켰다. 최근에 공자법의 개정안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제약조건들이 선행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이 단순한 금융상품의 하나가 아니라 과거 대가족사회에서 가족이 담당했던 부모봉양을 근로세대가 함께 노령세대를 부양하는 사회적 계약으로서 개별 가족의 부담을 대체하는 제도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연금 재정문제는 제도내적인 수지균형 원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세대간ㆍ세대내의 '신뢰' 구축이다. 초고령 미래사회에도 지속가능할 수 있는 노인부양에 대한 '국가와 개인' 혹은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책임분담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 체결이 필요하다. 이제 공은 국회에 넘어가 있다. 국민연금 개혁을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를 국민들은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