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30분.티베트 서부의 중바(仲巴)에선 아직 해가 뜨기 한참 전이다.


베이징(北京) 시간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시계가 실제보다 2시간쯤 앞서 가는 탓이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찬물로는 세수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식당도 문을 연 데가 없어 아침을 거른 채 출발이다.


다들 쉽지 않은 밤을 보낸 터라 말이 없다.


얼른 이 열악한 곳에서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뿐….



[ 사진 : 불교 신자들이 수미산으로 여기는 카일라스산.만년설을 꼭대기에 인 카일라스산 주위를 돌면 죄업을 씻을 수 있다고 해서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산돌이에 나선다. ]


중바를 떠난 지 2시간 가까이 돼서야 푸르스름한 대지 위로 붉은 띠를 두른 채 해가 떠오른다.


고원 위의 벌판을 얼마나 달렸을까.


벌판 한가운데에 천막 두 채가 외로이 서 있다.


가까이서 보니 찻집 겸 호텔이다.


비록 천막이지만 한자와 영어,티베트문자 등 3가지 언어로 간판까지 달았다.


찻집 내부는 흙바닥이지만 깨끗한 편이다.


컵라면과 음료수,야크기름을 뜨거운 물과 섞은 수요차 등을 팔고,장거리 여행자들을 위해 잠자리도 제공한다.


중바에서 175km쯤 달리면 다리가 하나 있다.


티베트 남부의 시가체 지구와 서부의 아리 지구를 가르는 마유교(馬攸橋)다.


우리의 도(道) 경계선에 해당하는 곳이다.


총면적이 31만㎢에 이르는 아리 지구는 남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을 사이에 두고 네팔,인도와 이웃하고 북쪽으로는 쿤룬산(崑崙山)을 넘어 신장(新疆)으로 통한다.


마유교에서 다시 2.5km쯤을 더 가자 공안검사참에서 통행자들의 여권과 통행 허가서를 일일이 검사한다.


국경이 멀지 않은 데다 앞으로 가는 길 주변에 군사지역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탐험 경로 가운데 가장 험한 지역에 들어온 만큼 길은 만만찮다.


특히 도로에 수직으로 파인 홈들은 길을 빨래판처럼 만들어 놓아서 진동과 소음이 끔찍하다.


이곳 운전자들은 아예 이런 '빨래판 도로'를 피해 곳곳에 임시 우회로를 만들어 놓았다.


우회로라고 해야 길 옆 평원으로 달린 바퀴자국이 전부지만 "빨래판 도로만 아니면 얼마든지 돌아가겠다"는 게 운전자의 심정이다.


아리 지구로 들어서 훠얼향 직전의 고갯마루를 넘어서자 드디어 성호(聖湖) 마나사로바와 신산(神山) 카일라스가 멀리서 눈에 들어온다.


훠얼에서 사발면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물을 끓이는 동안 동네를 둘러보니 훠얼은 정말 작은 동네다.


큰길가에 나와 당구를 치거나 옛날식 장기를 두는 남자들,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옷과 천으로 꽁꽁 싸맨 채 눈만 내놓고 다니는 여인들,굴렁쇠를 굴리며 노는 아이들….사진을 찍자고 아낙네 대여섯이 모였는데 다들 눈만 내놓고 있어 노소(老少)와 미추(美醜)를 구분할 수가 없다.


이미 날이 저물고 있어 성호 순례는 다음 날로 미루고 일단 성호와 그 인근에 있는 귀호(鬼湖) 사이로 난 207번 도로를 따라 중국,네팔,인도의 접경도시 푸란(普蘭)으로 직행한다.


해가 져서 캄캄한데 길은 험하기 짝이 없다.


어둠 속에서 급경사와 자갈길을 헤쳐 가느라 아슬아슬하다.


푸란현빈관은 규모에 비해 시설은 형편 없다.


화장실 세면장은 없고 난방도 되지 않는,중바현 초대소와 같은 수준이다.


다음 날 아침,다시 성호와 귀호,신산을 보러 나선다.


어둠이 걷힌 뒤 어제 온 길을 보니 다시금 아찔하다.


"이렇게 위험한 길을 그 밤중에 달려왔단 말인가…." 자갈길,'빨래판 도로'를 달려 먼저 귀호 '라양춰'에 이르니 그 빛이 정말 푸르디 푸른 코발트색이다.


귀호의 사방을 둘러싼 설산은 물빛,하늘색과 대조를 이룬다.


귀호의 가장자리로 난 길을 따라 3분의 2쯤 달리다 언덕을 넘으니 이번에는 성호 '마나사로바'다.


성호와 귀호의 거리는 3km가량.해발 4583m의 마나사로바는 티베트 3대 성호의 하나로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70m에 이른다.


가장자리 10여m가 벌써 얼어있지만 수면은 옥처럼 푸르다.


11세기쯤 유명한 불교 수행자 미라르바와 티베트의 토착종교인 분교(芬敎)의 실력자 나뤄번충을 설법으로 굴복시켰다는 '불분논전(佛芬論戰)' 이후 성호는 '마쑤이춰'에서 '불패지존의 호수'라는 뜻의 '마팡융춰'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당나라 고승 현장법사는 '대당서역기'에서 이 호수를 '서쪽나라의 아름다운 못(西天瑤池)'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불교신자들은 성호를 '신비의 호수'로 여기면서 성수(聖水·호숫물)로 심신을 씻은 뒤 호수 주변을 돈다.


마침 유목민으로 보이는 두 가족이 3마리의 말을 끌고 성호를 순례한 뒤 돌아간다.


성호에서 서북쪽으로 30km가량 떨어진 곳에는 신산인 카일라스산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있다.


항상 운해(雲海)에 파묻혀 있어 진면목을 보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카일라스의 주봉 '강런뽀치'(6656m)가 마침 머리에 만년설을 인 채 푸른 하늘 아래 제모습을 드러내 경탄을 자아낸다.


신산은 불교와 힌두교,분교 등에서 모두 신봉하는 산으로 힌두교에선 이곳을 대범천의 본산으로,불교신자들은 수미산이라고 여긴다.


불분논전의 무대도 바로 카일라스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마다 4월부터 10월까지 카일라스산 둘레를 돌며 앞다퉈 순례한다.


총 길이가 32km에 이르는 수미산의 바깥 둘레를 13번 돌면 일생의 죄업을 씻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제 구게왕국을 보기 위해 다시 북서쪽의 자다(札達)로 가는 길.해발 5000m 안팎을 오르내리는 고도에 악명높은 '빨래판도로'가 수백km씩이나 펼쳐져 탐험대를 괴롭힌다.


해발4000m 이상의 평원 끝에 버티고 선 거대한 산을 지그재그로 올라 해발 5300m 고개를 넘고 다시 어둠 속에서 지그재그로 산길을 내려가야 했다.


결국 사람도 지치고 차도 지쳤다.


3호차 바퀴 이탈,4호차 앞바퀴 펑크,3호차 연료탱크 나사 풀림,2호차 펑크….'최악의 하루'를 기록하며 자다에 도착하니 다음 날 오전 1시30분.길고도 긴 하루였다.


자다(티베트)=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