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완 < IT부 차장 > 얼마 전 초등학교 2학년생인 막내 아이와 대판 싸운(?) 적이 있다. 아이가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그때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이다. 지금은 그 일이 아이에게 얼마나 심각했는지 이해하지만 당시엔 이해는커녕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사태는 필자가 컴퓨터 전원을 잘못 건드려 꺼버린 데서 시작됐다. 1시간 전부터 게임을 하던 아이는 컴퓨터가 갑자기 꺼지자 울어댔다. 얘기인즉,게임 아이템의 능력치를 1시간 동안 끌어올려 놨는데 아빠 때문에 몽땅 지워졌다는 것이었다. "다시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자,막내는 "얼마나 힘든데…"라며 데굴데굴 굴렀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지난 12일 게임 아이템의 심각성을 한경이 기획보도하면서 울고불고하던 막내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막내도 기사 내용처럼 게임 아이템에 중독돼 비싼 돈을 주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끔찍한 생각마저 들었다. 최근 들어 아이가 2000원,3000원씩 자주 달라고 한 일도 이날따라 은근히 마음에 걸렸다. 게임 아이템 거래 양상과 규모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온라인 게임에서 괴물을 무찌를 때 쓰는 가상의 무기 가격이 수만원부터 수백만,수천만원에 버젓이 거래된다. 약관에 아이템 거래가 금지돼 있는 데도 거래 규모가 올해 1조원,내년 1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1조5000억원이라면 우리나라 빙과시장(8000억원)의 약 2배가 되는 규모다. 온라인상에서 거래돼 이렇다 할 고용창출이 없는 시장치고는 커도 너무 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같은 한국 아이템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중국의 불법거래 및 해킹 조직이 있는 데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수십만명의 젊은이를 고용한 아이템 작업장이 중국 전역에 걸쳐 수백~수천개가 성업 중이며 그 타깃이 한국시장이라는 취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싼 임금에 고용된 작업장 인력들은 온종일 게임을 하면서 아이템의 능력치를 끌어올린 뒤 조선족을 낀 중간거래상에 넘기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간거래상들은 한국 중개 사이트에 아이템을 올려놓고 손님이 접속해오면 유창한 한국말로 비싼 값을 받고 판다. 중국 작업장이 한국 시장에 내놓는 아이템 거래 규모가 거의 9000억원에 달한다는 게 경찰청의 추산이다. 일부 작업장은 아예 게임 사이트에 접속하는 게이머의 계정을 해킹해 능력치가 높은 아이템을 강탈해가기도 한다. 한국에선 게임 아이템을 둘러싼 강도 사기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오래다. 사태가 이런 데도 대책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게임업체들은 겉으론 반대하면서 속으로는 온라인게임이 한국을 게임강국으로 만든 1등공신이라며 은근히 아이템 거래를 부추기기까지 한다. 최근에는 아이템 거래가 잘되도록 중독성을 강화한 게임을 앞다퉈 내놓았다. 수많은 게임에 노출된 막내 아이가 중국 작업장과 연결돼 아이템을 돈주고 산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미국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처럼 아이템 거래 없이도 인기를 끄는 게임이 많이 나오게 하는 방안을 하루속히 내놓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