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광대, 왕을 갖고 놀다 '왕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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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간 방중술이 재치있게 묘사된 광대극을 구경한 연산군(정진영)은 침실에서 그것을 재현한다.
탐관오리의 부패를 풍자한 가면극 뒤에는 왕이 관련된 관리를 즉석에서 처결하는 장면이 따른다. 생모를 죽음으로 이끈 궁중암투를 담은 경극이 끝날 무렵 연산군은 피의 복수를 시작한다.
이준익 감독의 사극 '왕의 남자'는 광대놀음속의 이야기가 그대로 현실화되는 광경을 제시한다. 이런 구성은 놀이가 삶이며 인생이 곧 놀이라는 주제를 드러낸다. 광대놀이를 지켜보던 왕이 극중에 뛰어드는 장면도 허구와 현실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역사속 인물과 사건을 단순 나열하는데 급급해온 기존 사극에 비해 진화된 양식이다.
광대극 뒤에 왕의 행동을 붙여놓는 편집은 왕의 배신을 예고하는 영화적 복선이다. 양식상 먼저 등장한 광대는 '쫓기는 자'며 그를 따라하는 왕은 '쫓는 자'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동성애자 광대 공길(이준기)을 내세워 연산군의 폭정을 반추하는 이야기는 동성애 경극배우를 통해 중국 현대사를 짚어봤던 첸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1993)에서 영감을 얻은 듯 싶다. 두 작품의 주인공은 모두 사랑과 질투,배반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놀이와 광기가 어우러져 비극으로 치닫는 구성도 엇비슷하다.
이 작품은 동성애자가 중심인물이지만 연산군의 성도착증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공길은 연산군의 폭정을 모성결핍과 연관짓기 위한 수단이다. 이 때문에 공길에게 치중했던 원작 연극 '이'에 비해 영화는 공길의 파트너 장생(감우성)의 역할을 확대했다. 공길과 연산군의 동성애 장면도 한 차례 짧게 제시될 뿐이다.
이 작품에서 광대놀이는 엄혹한 시대에 진실을 폭로하는 해방구와도 같다. 거짓과 위선에 둘러싸인 궁궐로부터 탈출하고픈 연산군에게는 희망인 셈이다.
공길역의 이준기는 한국사극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대사연기는 조금 어색하지만 감정이 깃든 눈과 다소곳한 몸짓 연기는 무난해 보인다.
29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