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과학자의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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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왜 연구에 매달리는가.
토머스 쿤은 그것을 퍼즐 맞추기에 비유했다.
퍼즐을 즐기는 사람은 그 문제에 답이 있고 언젠가는 해결된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끼고 문제 풀이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의 믿음이다.
과학자들은 '확증이 없는 한 모두 가설(假說)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대중을 잠시 미혹(迷惑)시킬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당연한 명제에 집착한다.
그것이 과학의 본질이고 과학자들의 진정성이다.
황우석 교수가 울먹이는 모습으로 연구실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이제 줄기세포 연구성과의 진위논란은 서울대의 자체 검증으로 넘어갔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엄청난 후폭풍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그게 또 무슨 의미가 있나.
벌써 물은 엎질러졌고,'황우석 논란'은 이미 과학의 영역을 넘어 진행되고 있다.
과학이 과학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이 나라를 망치는 두가지의 그릇된 이념인 진보와 보수의 편가르기 싸움판으로 변질됐다.
많은 생명과학 전문가들은 솔직히 이번 황우석 논란이 처음부터 과학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비롯됐고, PD수첩의 문제제기도 그런 점에서 근본적 오류라고 말한다.
연구의 진실성에 대한 의혹제기가 일단은 그럴듯해 보이지만,줄기세포 연구가 얼마나 힘들고,그 연구기록에 대한 검증이 험난한 실험과정의 재연(再演)인만큼 도무지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일들의 연속임을 조금이라도 짐작할수 있느냐는 얘기다.
문제는 이제 아무리 그럴듯한 과학적 검증결과를 내놓고 맞다, 틀리다를 외쳐본들 누가 그것을 믿어줄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비과학적 사고에 파묻혀 의심을 품고 문제를 제기한 집단은 끝없이 또다른 의혹을 들고 나올 것이고,그들에게 아무리 '진실'을 설득해보았자 결국 메아리 없는 아우성에 그치고 말것이다.
누가 무엇때문에 이 지경으로까지 끌고 왔는지를 생각하면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진실성은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데 있다.
새로운 과학법칙의 발견과 정리는 수많은 오해와 좌절,실패가 거듭되는 긴 우회(迂廻)의 과정에서 이뤄졌다.
500여년전 코페르니쿠스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지구가 돈다"고 했다.
지구는 처음부터 돌고 있었지만,나중에 케플러와 갈릴레이의 의해 지동설(地動說)이 입증되기 전까지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여론과 이데올로기로 과학을 검증하고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말해준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논쟁의 본말이 뒤섞여 어차피 아마추어리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PD저널리즘의 진정성만 강조되고 과학의 진정성이 실종되어 버린 지금의 세태다.
과학자들의 우선적인 가치는 이미 짓밟혔고, 그래서 이땅의 과학자들이 좌절하고 있다.
만에 하나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의 '일등 끌어내리기'정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를 빈다.
솔직히 황 교수의 앞서나가는 연구를 빈정대고 흠집내는 일부 의학계의 부정적 경쟁자들과 집단의 조직적 움직임이 전혀 없다고 볼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의대는 30세에 그랜저를 타고,의대는 35세, 공대는 45세,자연대는 영원히 못탄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과학을 파고든 사람들이다.
과학자들의 진정성을 다시 생각해봐야할 이유다.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