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8:04
수정2006.04.03 08:06
과학자들은 왜 연구에 매달리는가.
토머스 쿤은 그것을 퍼즐 맞추기에 비유했다.
퍼즐을 즐기는 사람은 그 문제에 답이 있고 언젠가는 해결된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끼고 문제 풀이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의 믿음이다.
과학자들은 '확증이 없는 한 모두 가설(假說)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대중을 잠시 미혹(迷惑)시킬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당연한 명제에 집착한다.
그것이 과학의 본질이고 과학자들의 진정성이다.
그래서 황우석 교수가 "환자 맞춤형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는 없다"면서 사이언스에 게재된 논문의 철회를 요청했다는 소식은 그런 점에서 충격적이다 못해 참담하다.
물론 황 교수는 "연구 성과는 있으나,줄기세포 보관이 잘못된 것 같다"고 주장하고 있고,연구 그 자체마저 부정할 수는 없는 상황인 만큼 미리 판단을 앞세우는 것은 성급하다.
하지만 그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과학의 영역을 넘어 엉뚱하게도 진보와 보수의 편가르기 싸움으로 변질되어온 '황우석 논란'도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과학적 진실 앞에서 모조리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앞으로의 엄청난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이다.
많은 생명과학 전문가들은 솔직히 이번 논란이 처음부터 과학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비롯됐다고 믿었다.
PD수첩의 문제 제기도 그런 점에서 근본적 오류였고,그럴 듯한 포퓰리즘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줄기세포 연구가 얼마나 힘들고,그 연구기록에 대한 검증이 험난한 실험과정의 재연(再演)인 만큼 도무지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일들의 연속임을 조금이라도 짐작하지 못한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과학의 진실성은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다.
새로운 과학법칙의 발견과 정리는 수많은 오해와 좌절,실패가 거듭되는 긴 우회(迂廻)의 과정에서 이뤄졌다.
500여년 전 코페르니쿠스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지구가 돈다"고 했다.
지구는 처음부터 돌고 있었지만,나중에 케플러와 갈릴레이에 의해 지동설(地動說)이 입증되기 전까지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최소한 과학이 지켜야 할 신뢰의 한계를 넘은 이번 일이 앞으로 한국 과학의 길을 막고,과학자들에게 또다시 끝없는 좌절감을 안겨주고 만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막막하고 답답한 심정이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줄기세포는 없다"라는 황우석 논란의 결말이 과학의 진정성마저 의심받는 세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이 땅의 수많은 과학자들을 좌절하게 만들었지만,그렇다고 과학이 마땅히 추구해야 하고 과학자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받드는 우선적인 가치마저 짓밟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아직도 밤 늦은 연구실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수많은 과학자들은 '한의대는 30세에 그랜저를 타고,의대는 35세,공대는 45세,자연대는 영원히 못탄다'는 비아냥을 들으면서 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지금 과학자들의 진정성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이유다.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