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츠지이 노부유키(37)는 '기적의 피아니스트'로 불린다. 선천적인 시각 장애로 앞을 보지 못하는 그는 소리만으로 왼손과 오른손을 각각 움직여 음악을 익히고, 연주한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건반을 손가락으로 한참을 훑다가 피아노를 치는데, 신기에 가까운 그의 플레이에 청중은 압도된다. 2009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결선에 올랐던 때부터 그는 클래식 애호가들의 경외심을 받고 있다. 런던 로열 알버트홀과 뉴욕 카네기홀에서 수차례 공연할 정도로 클래식 계에서는 이미 스타다. 츠지이는 지난해 3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진 뒤 오는 3월 1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다시 리사이틀을 연다. 꼭 1년만이다. "한국의 관객들이 보여준 열광적인 반응을 잊지 못해 다시 오게 됐다"는 그를 22일 화상으로 만났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소나타', 쇼팽의 '소나타 3번' 등을 연주한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들려드릴 곡들은, 관객분들이 저와 함께 꼭 즐겨주셨으면 하는 작품들로 구성했습니다. 제가 쇼팽을 참 좋아하는데요, 쇼팽의 작품을 익히고 연주하다보면 아름답고 섬세하며 우아한 심상이 많이 떠오르곤 합니다." 쇼팽은 그에게 특별하다. 그가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마음 먹게 된 '근원'이다. "쇼팽의 곡을 듣다보면 아름다움을 넘어, 쇼팽이 고국인 폴란드를 사랑했던 마음까지도 다 느껴져요. 모든 요소들이 결합돼 저는 쇼팽에 대해 아주 각별한 마음이 듭니다."엄마 뱃속에서부터 보지 못했던 츠지이에게 피아노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푸른 산’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록색 삼각형을 그린다. 화가들은 다르다. 늘 보는 것에서도 새롭고 색다른 면모를 찾아내는 게 그들의 일이다. 똑같은 푸른 산에서도 누군가는 강렬한 생명의 에너지를, 다른 누군가는 고요한 침묵을, 어떤 이는 산이 품은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발견해 이를 캔버스에 옮긴다.서울 한남동 리만머핀에서 열리고 있는 4인 그룹전은 이처럼 자연을 보여주는 여러 화가들의 색다른 시선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김윤신과 김창억, 홍순명과 스콧 칸의 풍경화가 나와 있다. 전시를 기획한 미술평론가 앤디 세인트 루이스는 “같은 자연 풍경을 화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재창조해낸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예컨대 지난해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출품하며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모은 김윤신(90)의 그림은 자연을 강렬한 색채와 추상적 형태로 표현한다. 기하학적인 형태와 역동적인 구성 덕분에 자연이 품은 활력이 그림에 잘 드러나 있다. 김창억(1920~1997)은 추상적인 화풍을 통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자연의 고요함과 차분함을 작품에 담았다. 반면 미국 출신 작가 스콧 칸(79)은 풍경에 초현실적인 화풍을 더해 신비롭고 낯선 느낌을 연출해냈다.사진을 찍은 뒤 이를 기반으로 그림을 그리는 홍순명(66)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을 풍경에 녹여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최근작 ‘낯설게 마주한 풍경’ 등이 전시장에 나와 있다. 전시는 3월 15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회사원 김모 씨(35)는 소비자가 900만원이 넘는 샤넬의 지난 시즌백 제품을 최근 700만원대에 구매했다. 100만원 이상 저렴하게 산 비결은 리셀(재판매) 제품이라는 데 있었다. 한 시즌이 지나면 값이 크게 떨어져 리셀시장에 풀린다는 점을 염두해두고 시즌이 바뀌기만 기다렸다가 중고마켓이나 리셀 플랫폼 등을 뒤졌다. 김 씨는 “시즌이 지나면 새 상품 컨디션의 리셀 제품을 할인가로 살 수 있는데 굳이 매장을 방문해 신상을 살 필요가 있나 싶다”고 말했다.최근 2030 세대가 명품 시장을 인식하는 관점은 김 씨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경기불황 여파로 구매력이 위축되면서 명품을 구매하고 싶지만 제 값을 주고 사기엔 여력이 없는 젊은 층들이 값비싼 신상품 명품 대신 시즌이 지난 리셀 명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23일 이베이가 발간한 ‘2024 리커머스 보고서’를 보면 전세계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2021년 270억 달러(약 38조8000억원)에서 2025년 770억 달러(110조6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30대 등 이른바 MZ세대 소비자 60% 이상은 중고 명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시장에서도 거래 건수가 크게 늘었다.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는 지난해 거래 건수가 전년 대비 63%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중 MZ세대가 전체 이용자(2300만명)의 78%를 차지했다.중고 명품 시장은 팬데믹 때 본격 성장했다. 다만 성격은 다르다. 당시에는 백화점이나 정식 매장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물건을 웃돈을 불사하고 사기 위해 이용했다. 지금은 보다 싸게 사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명품 수요는 크게 줄었지만 브랜드들이 가격 인상을 반복하면서 신상품과 리셀 제품 값 격차